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렸을 적엔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뭐야? 이게 다야?"
지구라는 별에 먼지처럼 왔다가 바람 한 번 휙 불면 저 멀리 날아가서 흔적 조차 사라지는 그런 삶. 그런 게 내 삶 같았다. 그래서 매번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말 이게 다야?"
이런 거 말이다. 눈 떠보니 중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이었다. 난 학생이니 공부라는 것을 해야 했고, 강제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처박혀 있었다. 마침 재수 좋게 공부라는 것이 재미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일단 처박혀 있는 것 자체가 답답한데 거기서 하는 공부가 재밌기야 했겠나.
그냥 친구들하고 공 차고 놀러 다니고 화장실에서 담배나 피우고 선생한테 걸려서 대걸레로 두들겨 맞고. 그래도 그게 공부하는 것 보다야 훨씬 재밌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눈 앞엔 대학 입시가 있었고, 부랴부랴 공부를 해서 대학교란 델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님 덕분에 굶주리거나 궁핍해 본 적 없다. 남 부럽지 않은 만큼 입었고 먹었고 놀았다.
대학교 때도 취미 삼아 알바를 몇 달 해 본 것이 다였다. 그 시간에 공부하여 장학금이나 타라는 부모님 덕분에 원 없이 공부했을까? 물론 아니지. 웃긴 게 당시엔 대학교를 가면 첫 학기엔 대부분이 술 먹고 연애하며 정신없이 놀았다. 그런데 난 고등학교 때도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여 진짜 장학금을 탔다. 그때 맞본 성취는 제법 달콤했다. 그러나 그 뒤로 꾸준히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교 졸업해서 바로 취직한 친구들이 지금 보면 직장인 10년 차 정도 되었더라.
나는 20대 후반, 아니 30대가 넘어서도, 더 솔직히 말하면 요즘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청춘을 지배해 온 저 질문은 나를 여러 방향으로 이끌었다. 부산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친구가 투어가이드로 있던 필리핀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남자는 태어나면 한양을 가야지 하며 서울로 학교를 옮겼다. 학교를 다니다 운 좋게 인턴으로 공기업에 취직을 하여 잠깐 일할 계기가 있었다. 당시 마침 기회가 되어 정규직 채용이 가능한 선발 전형이 열려 나와 함께 인턴을 하던 많은 친구들이 그 공기업에 떡하니 취직을 했다.
나는 또 한 번 "정말 내 인생 이게 다야?"를 외치며 다른 선택을 한다.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에 뭔 공부를 하러 갔겠나. 누울 자리 보고 다리 편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님 은혜를 입고 다시 또 놀 시간을 확보하였다. 대학원은 조용히 다니다 졸업했을까? 미국에서 약 1년 정도를 보내다 한국으로 돌아와 석사를 졸업했다.
그때 내 나이가 딱 30살이었다.
이제 더 이상 비빌 대가 없었다. 부모님도 기브업! 나는 그렇게 취직을 한다. 이름만 거창한 곳에 떡 하니 계약직으로 말이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그것도 직업이라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계약이 끝나자 여긴 에누리도 없더라. 그리고 인연이라는 것이 끝날 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도 환경도 바뀌며 갈 길을 재촉하더라. 그렇게 안녕하고 약 3개월을 놀았다. 당시 내 딸아이는 태어난 지 5개월 정도 되었었고, 나는 그때도 여전했다.
"정말 이게 전부야?"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고, 여태 몇십 년을 그리 해온 것처럼 허울만 쫓았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아주 운 나쁜 인간이라며 자위했다. 절대 이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속으로 속삭였지만, 나름 그런 무기력한 자신이 미웠고 한심했다.
덜컥 두려웠다. 이렇게 평생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살까 봐 겁이 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삶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다가 죽을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두려움에 쫓겨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 인연이었을까? 작년 초에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잠깐 걷다 왔다. 순례길에서의 10여 일이 수 십 년의 세월보다 더 나와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약 4년을 다녔던 회사를 관뒀고, 회사를 관둔 지 2개월 만에 20년을 넘게 피워온 담배와 이별했다. 내 비즈니스를 하겠다며 설레발을 좀 치다가 당분간은 조금 더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직장에 둥지를 틀었다.
요 몇 개월 내게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는 내 20대를 함께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준 것 같다.
"정말 이게 다야?"
...
"정말 이게 다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던 수준을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맞다. "정말 이게 다야?"라는 물음에는 이미 결핍이 묻어있는 질문이다. 나는 왜 이리 뭐가 없냐, 안 되냐, 잘 안 풀리냐 라는 전제 하에 던진 질문이다. 즉, 나는 지난 십여 년을 결핍 속에 살았다. 마음이 매우 가난했다는 말이다. 나는 잘난 부모 덕분에 대학원까지, 미국까지 갈 기회가 주어졌지만, 항상 부족했고 가난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결핍감에서 풍요로움을 느끼려고 한다.
나는 실로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장소, 컴퓨터라는 도구, 멀쩡한 손가락과 두뇌 등등
이 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대상은 실제 지천에 널려있었다.
단지 난 그것을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만하고 오만하며 무식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이제 눈을 뜨고 다시 세상과 나를 본다.
많은 것들이 보인다.
그제야 난 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복 받은 사람이란 걸 새삼 느낀다.
온통 '있음' 투성이이고, 온통 '풍요로움'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행복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눈을 잠깐 감았다가 다시 떠보라.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라.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진 않는가?
이래 보나 저래 보나 그것이 당신의 진실이다.
스스로 우리 삶을 창조하자.
'없음'의 세계에서 '있음'의 세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