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 조던 B. 피터슨 -
피터슨 교수가 주제를 풀어내는 형식은 매우 일관적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본인이 겪었던 경험 등으로 입을 뗀다. 처음엔 이런 이야기를 도대체 왜 하지? 하며 멍하니 읽게 된다. 그러다 주제와 절묘하게 연결되는 걸 보면, '당했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머리 안 좋은 나는 가끔 "에이~ 너무 억지잖아"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내가 그 아저씨에게 입을 댈 짬밥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그의 논리를 따라가기 바쁘다. 짧은 식견으로 그의 세 번째 법칙을 소개해 보겠다.
이번 챕터는 그가 말하는 인생의 제3법칙이다.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이번 챕터의 첫 번째 소제목은 위에 보는 바와 같이 '내가 살던 고향 마을'이다. 그는 예전 본인이 어린 시절 자랐던 캐나다 중서부에 있는 앨버타주의 페어뷰라는 곳의 이야기로 챕터를 시작한다.
장소, 날씨 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그와 같이 지냈던 친구인 크리스, 크리스의 사촌 동생 에드 그의 친구 이야기로 넘어간다. 피터슨 교수를 포함한 무리들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악동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모범적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대마초가 얼마나 통용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대마초를 피워댔고, 파티를 다녔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다고 한다.
피터슨 교수와 그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깎고 다졌던 피터슨 교수와 고향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던 친구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비슷했지만 달랐고, 그러한 미묘한 차이 아니 너무나 큰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져 나중에는 추억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어색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럼 피터슨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왜 했을까?
단순히 사람은 묵은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정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는 묻는다.
도대체 왜 크리스나 에드, 다른 페어뷰 친구들은 한결같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만 곁에 두었을까?
피터슨 교수 다운 질문이다. 그는 다시 본질을 캐내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크리스나 에드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다.
너의 주변을 둘러보라. 네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고, 그 사람들은 너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들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은 왜 그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가?
그 말인즉슨, 피터슨이 하려는 말은 이것이다.
'당신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든 이 모든 것은 모두 당신 탓이다!'
가혹하고 냉정한 아저씨다. 사실 그래서 그가 더 좋긴 하다. 그가 하려는 말은,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은 단지 여친이나 남친, 결혼 상대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의 뜻은,
'당신을 돌아보라. 그리고 당신 주변을 돌아보라. 어떤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최고의 친구를 두고 싶다면 당신부터 최고가 되어라! 당신은 그때 당신으로부터 진정으로 최고의 모습을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둔다. 과거에 그런 사람들에게 충분히 당해서 잘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그들은 스스로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게 싫을 수도 있다.
상당히 고차원적인 팩폭이다. 아무나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지성적인. 사람들이 그런 친구들을 옆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그녀가 게을러서 무지해서 그런 친구들 보다 나은 친구들을 둘 방법이 없다.
그들은 항상 이런 생각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귄다고 한다.
더 쉬운 길로 가자. 앞뒤 생각할 것 없이 현재를 즐기자. 서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자. 그렇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낭비할 수 있다.
쉬운 길로 가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인 걸 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래 사람은 그래"라며 본인의 행동을 당연시 해선 안 되나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먹는 게 남는 거여'하며 자기가 뭘 먹는지도 모른 채 먹어대는 사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며 먹고 마시고 부어대는 사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며 빚내어 외제차 타며 위안을 얻는 사람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라며 명품 백이라도 걸치자 하며 쇼핑이나 다니는 사람들
위의 말을 한 번 뒤집어 볼까?
무조건 입에 처넣고 보는 사람, 살이 쪄서 내 몸도 못 가누는 사람, 그 많은 살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약이나 먹고 살이나 빼자며 다시 먹는 사람, 살찐 게 어때서 하며 갑자기 '당당함'을 운운하는 사람.
술에, 약에 취해 사는 것이 자유로운 영혼의 징표인 듯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터져 모든 일상이 스톱이어도 클럽에서 뒹구는 사람, 외제차 할부에 원룸 월세 내고 매일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 명품 가방에 명품 구두에 명품 옷을 걸치고 나가 맛있는 음식 먹는 것 외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
이쯤에서 피터슨 교수의 얼굴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말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물론 위의 말은 내가 한 것이다. 그의 논리를 따와서 말이다.
자~ 피터슨 교수가 하는 말을 다시 들어보자.
실패하는 방법은 배울 필요가 없다. 어떻게 해야 실패하는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두려움과 증오, 쾌락, 배신, 기만도 마찬가지다.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공부가 필요한가? 범죄와 악행을 저지르는 데 수행이 필요할까? 나쁜 짓은 쉽다. 실패도 쉽다. 삶의 무게를 외면하는 것은 더 쉽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것도 쉽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미래를 포기하고, 당장의 싸구려 쾌락에 빠지는 것도 쉬운 선택이다.
그래 맞다. 쉽지만 이런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받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저런 쾌락주의나 편의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이로 인한 결과가 닥치면 남을 불평하거나 세상을 먼저 탓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면 그들의 정신은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만큼 건강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으로 들어가 보자.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피터슨 교수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을 언급하며,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 작은 돌멩이를 쥐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서 있는 다윗의 정신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믿습니~~~이꽈??
믿고는 싶은데 어디 이게 믿는다고 소리친다고 될 일이겠나. 우리가 여태 삶이라는 무게를 짊어지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저기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명제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당신은 믿어야 한다. 골리앗이 40일 동안 싸움을 걸어도 그 누구도 그의 도발에 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섰을 때 그의 형제들은 양이나 치라며 비아냥거렸다.
우리는 이제라도 다윗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어렵다. 절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 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냥 편하고 쉬운 길을 가라. 그리고 만족하고 살아라. 그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고 살면 된다. 이러한 삶에 만족할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일어서서 어려운 길을 가라. 자신이 살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실현하라.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라. 길이 되어라.
할 수 있다고 믿어라.
다윗처럼 돌멩이를 손에 쥐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당당히 서서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