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그러나 충분히 영적인 삶

성숙한 삶을 살고 싶다

by 대충철저

종교는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충분히 영적이다.


소위 말하는 교리에서 말하는 바를 믿으려 해 본 적은 없지만,

내 인생을 관통하는 나만의 신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 중이다.


어떤 믿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있으나 어디 믿음이라는 것이 쉽게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믿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믿음 보단 오히려 앎이 생겼다.

나는 믿지 않고 그냥 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나는 중력이 있음을 믿지 않고 중력이 있음을 안다.


내가 알아낸 두 가지가 있다.


1. 평소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의 생김새를 결정한다.

2. 외부 세상은 내 마음의 생김새에 따라 결정된다.



둘을 연결하여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나의 평소 마음 가짐이 나의 삶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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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내 생각에 신중하다.

내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생김새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좋은 것들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삶에 도움이 되는 것만 듣고, 보고, 경험하려 한다.


생각의 힘을 잘 모를 땐, 순간의 쾌감을 따랐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 당장 만족감을 주는 것을 쉬이 쫓았다.

담배, 술, 포르노 등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들에 중독되었었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나의 삶의 80% 이상은 해로운 것(생각, 말, 행동, 경험 등)이 차지했다.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그러나 나는 살아간 것이 아니라 죽어갔다.

당시 나의 행동 등을 돌이켜 보면, 살아 있었던 것 자체만으로도 큰 행운이다.


생각의 힘을 알고 나서는 극도로 나의 생각을 조심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래서 어떤 말과 행동을 표현하는지를 매 순간 지켜본다.

훈련이 잘 되었다는 순간의 방심은 나를 더 쉬운 길, 자극적인 길로 데려간다.

그래서 나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내쫓기 위해 매일 나는 나를 괴롭힌다.


하나의 예가,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상상을 한다.

'좋은'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매일 아침 아래의 질문 등에 답하곤 한다.



Q: 도대체 나에게 좋은 삶은 무엇일까?

Q: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그렇게 매일 아침 나를 괴롭히고 나면, 나태한 내 마음이 조금 더 긴장한다.





이러한 노력은 정제된 표현으로 세상을 만나게 한다.

말과 행동은 이전보다 거칠지 않다.

가끔은 이러한 연마된 말과 행동이 나를 억압하는 건 아닐지에 대해서도 신중히 살핀다.


절제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나를 되려 옥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교리가 인간을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듯이 말이다.


마지막이다.


이렇게 나를 다스리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이 생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인생이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과연 이 모든 게 무슨 의미인가?


지난 몇 년간은 위의 질문에 흔들렸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이러한 질문은 나약한 마음에서 나오는 나약한 질문이다.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만들어진 신중한 언어가 아니다.

나약한 이들, 몸뚱이가 시키는 대로 편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언어다.

삶이 무엇인지, 나는 왜 이 삶을 사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자들의 변명이자 핑계다.


그래서 결론 맺었다.


저러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답은 어쩌다 보니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답을 하는 것'이다.

답은 외부에 있지도 않고 내부에 있지도 않다.

답은 내가 내부에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외부의 어딘가에서 우연히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답은 나라는 인간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의 내부와 외부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나 스스로 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내가 저 답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여기서 왜 이렇고 있는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거기까지 어떻게 가고 있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어쩌면 이 질문들이 내 삶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근원적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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