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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Aug 22. 2022

우연처럼 첫사랑을 만나다.

#격동의 9X학번 블루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나는 가사를 담은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그런 노래 가사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퇴근하며 그 노래를 듣고는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그동안 사귀었던 사람이 많지 않아 노래 가사 같은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 아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몇 년 전 내게도 그런 노래 가사 같은 일이 생겼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스무 살 여름이 되어가던 시기였다. 팔꿈치가 다 헤진 교복을 벗고 대학이라는 새롭고 낯선 세계에 둥지를 튼 그때, 친구들은 하나둘씩 의지할 짝을 찾아 떠났지만, 난 동아리의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갈 때쯤 내 품에는 사랑스러운 여인이 아닌 줄이 빠진 낡은 기타가 항상 안겨 있었다.


그런 나를 측은하게 여긴 한 여자 선배가 동생의 친구를 소개팅 시켜주겠다고 했다.


"너 소개팅 한 번 해볼래? 내 동생 친구 중에 예쁘고 착한 아이가 있는데..."


일단 예쁘고 착하다는 말에 "그런 인재가 아직까지 남자 친구가 없어?"라며 의심하며 선배에게 말했다.


"누나, 저는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해요. 차라리 누나 동생을 소개해주시면 안 돼요?" 

(예전에 선배의 동생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선배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선배는 잠시 '이 새끼가 이른 시기에 찾아온 무더위에 실성했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너랑은 혹시라도 가족으로 엮이고 싶지는 않는구나." 라며 소개팅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 라는 단호한 말에 나는 당연히 소개팅을 하겠다고 했다.


선배가 소개해주기로 한 그녀는 다른 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음대생이었다. 성악이라고 하니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였고, 그녀를 처음 만나기로 한 날 '파바로티' 선생님을 떠올리며 일단 풍채가 위풍당당하며, 멋진 구레나룻과 수염 그리고 노래도 잘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과 다르게 크지 않은 키에, 기대했던 구레나룻과 수염이 전혀 없는 아직 앳된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특히 그녀는 성악을 해 그런지 목소리가 좋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하얀 피부와 큰 눈, 그리고 쌍꺼풀이 인상적이었다. 


첫 소개팅에 긴장해 사시나무 떨 듯 긴장하며 연신 말실수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웃어주었고, 헤어지기 전 용기를 내 그녀에게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후 수업이 끝나면 그녀의 학교 앞으로 찾아가거나 그녀가 우리 학교 앞으로 오기도 하며 우린 그렇게 사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조금씩 늘어나는 비자금과 무이자 할부가 가능한 신용카드로 그녀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선물도 많이 해줬겠지만, 스무 살 당시 나는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처절한 생활을 하던 자취생 신분이라 그녀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다.


길가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1인분을 시켜 놓고 둘이 나눠 먹을 때도 있었고, 김밥 한 줄을 산 뒤 놀이동산에 가 한 장의 자유이용권으로 서로 번갈아가며 놀이 기구를 타는 안습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지만 그녀는 나와 있으면 엉뚱한데 재밌다고 해줬다. 돈이 없을 때는 캠퍼스를 무작정 둘이 걷기만 해도 그녀는 내게 '너와 함께 있으면 재밌어.'라는 말과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녀의 미소를 선물해주곤 했다.


그렇게 그녀와 몇 개월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 나 봤을 때 생긴 거 보고 실망 많이 했지?" 


그녀는 크게 한 번 웃더니, 


"소개팅하기 전 언니한테 너 순박한 동남아 농부처럼 생겼다는 말을 들었어. 그런데 나는 외모보다는 착하고 재미있는 사람 그리고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좋아."


내가 그녀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기뻤고, '그녀는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영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관의 나이 시절의 나는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 소년처럼 순수하지 못했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 불타오르는 욕정의 화신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으면 그녀를 포옹하고 싶었고,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그녀를 보면 마이크를 뺏은 뒤 내 얼굴을 들이밀며 키스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키스해보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만날 때마다 키스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쏟아냈다.


"나는 사나이의 음악 락! 락! 을 좋아해. 특히 천재 베이시스트 '진 시몬스'가 이끄는 "키스"라는 그룹을 좋아하지. 언제 너와 함께 "키스"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어. 키스. 키스.

(참고로 진 시몬스는 천재 베이시스트는 아닌 거 같다. 아니 단호하게 아니다.)


"난 '짐 캐리'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중 <마스크>라는 영화를 제일 좋아해. 그 영화에서 짐 캐리 이름이 뭐냐면 "스탠리 입키스"야 "입키스"


"키스 해링 그림 본 적 있어? 단순하면서도 뭔가 상징적인 키스해.... 링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진다고 해야 하나.. 키스해.. 링"


나의 꾸준한 키스 드립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의 첫 키스는 몇 달 후에 가능했다.


첫 키스를 하면 머릿속에 종이 울린다, 세상이 온통 환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 쓸데없고 그냥 좋았다.


그녀가 살던 아파트 한쪽 계단에서 첫 키스를 한 날 나는 "키스 좋아! 정말 좋아!"라며 몇 번이고 더 키스를 하자고 우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우리의 설레고 풋푹했던 사랑은 고작 1년밖에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이별은 나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는 나의 군입대 때문이었다. 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그녀를 만나 "난 군대에 가야하니까 우리 헤어지자,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기다리라고는 도저히 말 못 하겠다."라는 쓸데없는 허세를 부렸고 그래도 그녀는 날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은 뒤 그녀의 편지는 자연스럽게 끊기게 되었고,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구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훗날 휴가 나왔을 때 선배들과 술을 마시다 그녀의 안부를 들었을 때였다. 


그날 그녀를 절대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나를 위로한다며 선배들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엄청 먹였고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하도 눈물을 권유해 마지못해 좀 펑펑 울었다. 


그렇게 그녀와 난 완전히 헤어졌다. 부대에 복귀한 뒤 그녀를 잊기 위해 더 열심히 군생활을 했고, 다시 복학생의 신분이 되어 학교를 다녔다. 그 후 졸업, 취직 등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생각이 자주 나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 스무 살 시절을 떠올릴 때 그녀가 생각났고 '뭐..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하는 마음일 뿐 사실 그녀의 안부가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내게 그녀는 이제 스무 살 기억을 떠올릴 때 퍼즐의 한 조각 같은 존재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를 잊고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다. 하지만 몇 년 전 코엑스에서 진행한 어린이 관련 전시회에 다니던 회사에서 참여하게 되었고, 직원들과 나는 많은 부모님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회사의 제품의 판매와 홍보를 하고 있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게 지겹기도 했고 계속 서있다 보니 다리도 아팠다. 


빨리 전시회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시계만 바라보고 있을 때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 부스 근처로 다가오는 한 여인을 봤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모습 하지만 누군지 이름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대학 동기인가? 아니면 거래처 사람인가?' 그러나 아이와 여인이 우리 부스 앞에 왔을 때 그녀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스무 살, 나의 첫사랑 그녀였다. 그녀는 그때와 비슷하게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고, 그런 그녀 뒤에 유모차를 끌고 오는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도 있었다. 노래 가사 같은 일이 내게도 생기다니, 잠시 후 그녀도 나를 알아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하긴 동남아에서는 흔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나의 외모를 잊을 순 없었을 거다. 


그녀도 나도 반가운 마음보다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만난 상황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서로 어떻게 지내?'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풋풋한 20대를 지나 30대를 훌쩍 넘겨버린 그동안의 안부를 이제는 조금씩 변한 서로의 모습을 통해 주고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쏙 빼닮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나는 책에 관심을 보이는 여자 아이에게 "와! 아가 눈이 참 예쁘구나!" 하며 팔아야 하는 책을 "예쁘니까 특별히 선물!" 이러며 아이에게 선물로 줬다.


그녀는 아이에게 "괜찮은데... **아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라고 했고, 내게 미소 지으며 고맙다는 아이에게 "엄마 닮아 눈이 예쁘구나" 라며 칭찬해줬다. 그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은 스무 살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를 만날 때 눈이 예쁘다고 말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니 아마도 앞으로 영영 볼 수 없겠지만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눈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다. 


다른 부스로 가족과 함께 가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그녀가 행복한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주 많이 늦었지만 뒤늦게 그녀에게 눈이 예쁘다는 말을 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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