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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l 26. 2022

젊어도 고생은 안 하는 게 답.

# 격동의 9X학번 블루스

아직 체력이 쌩쌩하던 대학 졸업한 뒤 몇 년 되지 않았을 나름 젊은이라고 불렸을 때 이야기입니다.


졸업 후 친했던 친구들과 여름에 일정을 맞춰 함께 여행을 꼭 떠나보자고 했지만, 서로 다른 지역에서 회사를 다니는 네 명이 시간을 맞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결국 저와 친구들은 금요일 하루 연차를 낸 뒤 주말까지 2박 3일 동안이라도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제주도, 부산, 강원도, 두바이 등 유명 관광지를 놓고 고민한 결과 치즈로 유명한 친구 녀석의 고향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치즈의 고장 임실로 초대한 녀석의 말로는 임실은 다양한 놀거리와 볼거리가 있다면서 특히 치즈마을에서 함께 치즈도 만들어보고, 젖소의 젖도 함께 짜 보는 체험도 해보자며 우리의 첫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줬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잠자리는 친구네 집에 있는 텐트를 가지고 차에 싣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임실 근처를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하는 여행이었기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했지 저희에게 잠자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집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변에는 논밭과 그 주변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작은 산이 마을을 전체적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배산임수의 명당이라는 불리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창문을 열고 고향의 바람을 맞으며 콧구멍 파고 있는 친구 녀석을 바라보며 풍수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가끔 실수로 저런 놈도 나올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친구의 부모님께서 저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식사를 한 뒤 텐트를 싣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친구는 아버지께 물었죠. "아버지, 우리 텐트 어딨어요?" 아버지께서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텐트? 갑자기 왜?"라고 하셨고, 친구는 저희의 여행 스케줄에 대해 설명드렸고, 캠핑 장비 그런 건 지금까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텐트는 창고 어딘가에 있을 테니 잘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농기구 및 다양한 잡동사니가 있는 창고에서 나온 것은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이용하고 있는 전설의 브랜드 버X로 텐트였습니다. 친구 아버지께서는 잘 찾았네 하시며 그거 근데 하도 안 친지 오래돼서 제대로 될 런지 모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코펠과 같은 캠핑 장비는 이미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친구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버너와 냄비 등 조리도구와 망치만을 간단히 챙겼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던 치즈마을 체험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동네 시냇가 근처 공터에 텐트를 치고 술과 고기를 영접하는 신성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친구 아버지께서 미리 마을 분들에게 이상한 애들이 놀다 갈 거라며 양해를 구해주셨고, 틈만 나면 엄지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파는 한심한 녀석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친구 녀석이 동네에서 평판이 좋은 청년이었는지 지나가는 마을 분들께서도 오히려 저희들에게 재미있게 놀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텐트 앞에 유유하게 흐르는 시냇물을 본 한 친구 녀석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물에 뛰어들었고, 지나가는 마을 할머니께서는 "저 물, 똥물 인디.." 라며 흐뭇하게 바라보셨습니다. 시원하게 수영을 하고 친구의 등은 고춧가루 외에도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여러 알 수 없는 글로 설명하기 불쾌한 냄새가 우리 곁을 풍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 녀석은 저희와 고기도 마시고 술도 먹었습니다. 


운전도 오래 하고 더운 날씨에 술까지 들어가서 그런지 저희는 이른 시간에 낡은 파란색 버펄로 텐트에 누웠습니다. 우린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언제 씹어도 맛있는 직장상사를 함께 오징어처럼 잘근잘근 씹었고, 얼마 전 봤던 영화 이야기, 요즘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더 이상 씹어먹을 직장상사도 근황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우리가 꿈 많은 여고생들이 모인 것도 아닌데, 한 친구가 더운 여름밤에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고 우린 서로 알고 있는 도시전설을 이야기했습니다.


말하는 녀석의 정신 상태가 의심되는 음모론부터, 들었을 때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 여러 나라의 각종 괴담 등을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평소에 조용하거나 일정한 크기의 소리가 들리는 물건이나 장소에 갑자기 큰 소리가 나거나 물건이 흔들리거나 한다면 폴터가이스트 현상, 즉 귀신이 나타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귀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잔잔하게 흐르던 물소리가 갑자기 거세게 났는데 친구 한 녀석이 "어억!" 하는 소리를 냈었고. 우리는 그 녀석을 쫄보 녀석..이라 놀렸습니다. 그리고 이후 우리 모두가 모두 쫄보처럼 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는 시냇가 근처의 뱀파이어 모기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충망도 없는 텐트를 모두 꽁꽁 닫고 잤는데, 텐트 안에는 세 남자의 땀냄새와 한 남자의 정체모를 쓰레기 똥물 냄새로 섞여 진동을 했습니다. 그 향기로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문을 열면 십자가, 마늘로도 퇴치할 수 없는 뱀파이어 떼가 쳐 들어와 우리를 고문했고, 결국 다시 텐트의 문을 빈틈없이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새 모기에게 뜯기며 괴롭게 잠드느니 차라리 악취와 더위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네 남자는 좁은 공간에서 구슬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끈적끈적한 우정을 섞으며 잠들었는데 한 친구가 일어나더니 밖에 귀신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분명 사람 발자국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부터 우리 물건들이 폴터 가이스트 현상인지 움직이는 소리 등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귀신을 믿지 않기에 "바람 소리겠지. 네가 잘 못 들은 거야."라고 했지만 옆에 잠들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깬 다른 한 친구까지 자기도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다며 함께 귀신이 저희 곁을 방문한 거 같다는 것을 거들었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낡고 좁은 곰팡이 냄새 풀풀 나는 텐트에서 부둥켜안고 자는 네 남자에게 찾아오고, 이 동네 귀신들 참 할 일도 없나 봅니다. 아니면 오랜만에 시골에 방문한 젊은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봅니다. 


텐트 밖을 열면 또 뱀파이어 떼가 들이닥칠 것이고, 살짝 제가 밖을 봤을 때 아무것도 없고 다시 주변이 조용해지니 저희는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다시 친구가 밖에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고 다시 우리를 깨웠고, 그 소리를 이제 저도 듣게 되었습니다. 무언가의 존재가 우리 도구들을 이리저리로 움직이는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그동안 이 야심한 시간에 사람의 방문이 없었던 이곳에 느닷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니 반가움에 호기심 많은 물귀신이 우리의 물건들을 건드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에서 나는 소리에 모두 일어난 친구들에게 저는 물었습니다. 


"이 중 교회나 절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 손." 


그 질문에 한 녀석이 여름 성경학교 우수 졸업생이라며 손을 듭니다. 저는 녀석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네가 우리 파티의 탱커다. 주기도문이라도 외우면서 텐트 문을 열고 네가 앞장서. 귀신 따위는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아 내가 왜!"라고 했지만 저와 친구들은 녀석에게 앞장서라고 했고, 설마 귀신이 설마 있겠냐 라며 녀석이 텐트 입구 쪽을 열고 나섰을 때, 개들이 오늘 여기서 회식 또는 정모가 있는지 저희 텐트 근처에서 개 몇 마리가 저희가 남긴 음식 및 내일 먹으려 준비한 음식들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를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은 바로 친구네 동네에서 나름 "개 호랑이"라고 부르는 동네 야산에 사는 들개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들개들은 저희를 향해 덤벼 들지 않았고, 오히려 저희 눈치를 살살 보다 뒷걸음질 치며 도망갔습니다.  


저희는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 한 번씩 웃고 어지러워졌던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모기에 물리고, 땀냄새와 이상한 물 냄새로 범벅이 된 저희는 서로를 쳐다보며 젊어서 고생은 안 하는 게 답이다 라는 말과 앞으로는 제대로 사람다운 여행지를 다니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즐거운 추억이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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