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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Oct 04. 2022

캠핑에서 만난 강력한 빌런 무리

캠핑을 다니며 최근에는 빌런을 만나지 않았던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다양한 빌런을 만났는데, 매너 타임이 지난 시간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거나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며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방치한 채 아침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 사이트에서 흡연하는 사람 등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빌런 무리는 그동안 제가 만났던 캠핑 빌런 중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캠핑장의 타노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럼 그 빌런 무리를 만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캠핑장에 들어섰을 때 구석이지만 넓은 사이트, 그리고 화장실과 개수대가 근처에 있지만, 놀이터는 약간의 거리가 있어 '이번 캠핑은 좀 편하고 조용하게 보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짐을 나르고, '이번 캠핑은 또 어떤 새로운 재미가 있을까' 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텐트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을 시샘하는 더위에 땀으로 온몸을 적신 제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 옆에 어떤 아저씨, 아주머니 무리가 열심히 타프를 치고 짐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조금 들기 시작했는데, 분위기를 살펴보니 숙소는 다른 곳에 있는데 제 옆에서 식사와 술자리를 만드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최소 3~4개 팀(아이들도 있는 것을 보니 가족 동반으로 온 것 같았습니다.) 숙소는 카라반과 글램핑 쪽인 것 같았고, 제 옆의 타프에서는 얼마 되지 않아 음식을 만들며 아주머니들 특유의 찢어지는 웃음소리와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껄껄껄'하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제발 매너 타임 전까지만 마음껏 마시고 떠들고 논 뒤 매너 타임이 되면 조용히 잠자리로 가고, 내일 아침이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소원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이제 나름 다 컸다고 아빠의 감시가 귀찮아진 아들은 "아빠 나 따라오지 마! 안전하게 놀고 아이들과 싸우지 않고 놀 테니까!"라는 말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놀이터로 달려갑니다. 이 시간은 제가 캠핑에서 고기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입니다.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독서를 즐기며 여유로운 캠핑을 즐기고 싶었는데, 옆 사이트의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크게 90년대 댄스 음악은 틀어놓은 것은 기본이고, 다들 난청이 있어 작은 소리로는 서로 대화가 안 되는지 또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캠핑장에서 드러내고 싶은지 있는 힘껏 큰 소리로 말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일행인 것처럼 그들의 모든 대화가 다 들렸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참 다양했습니다. 최근에 불거진 정치 이슈부터, 부동산 문제, 아이들 학원 이야기, 엄마들의 피부 관리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들로 다양한 리액션과 함께 버라이어티 한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승환 씨의 노래가 나왔을 때 한 아저씨는 오장육부를 뒤틀며 목숨 건 요단강 바이브를 하며 따라 부르고 캠핑장의 오후를 격동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근처 마을 회관에서 북, 장구, 꽹과리 등의 악기를 빌려와 아들과 아들이 새로 사귄 친구 몇 명과 함께 저희 사이트 앞에서 국악 보이즈를 결성해 사물놀이로 맞불을 놔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오후 시간이니 '내가 참아야지' 하며 책을 다시 읽으려 해도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가 잘 놀고 있는지 한 번 바라보고, 캠핑장 근처를 산책했습니다. 물론 아들이 제게 내린 미션 (캠핑장에서 눈에 띄는 곤충을 채집해라!)을 함께 수행하면서요.


사마귀, 메뚜기, 풍뎅이 몇 마리를 잡아 사이트로 돌아왔을 때 땀으로 범벅된 아들은 혼자 음료수를 찾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잡아 온 곤충들을 보고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하며 제게 그 곤충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앞으로 자신은 커서 곤충 유튜버 겸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이 아이... 9년의 인생을 살면서 장래희망이 수시로 변하는데, 엄마의 남편(뭐냐 이 녀석!! 그건 안된다!)에서 출발한 아이의 꿈은 프로게이머, 아이돌, 파충류 전문 수의사, 게임 개발자를 거쳐 이제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아빠의 입장에서 이 아이가 나와는 다르게 커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운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야심 차게 준비한 양념 갈빗살을 아이와 구워 먹으려 하는데, 옆 사이트는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오후에는 그나마 다른 사이트의 소리와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덕분에 약간 묻히기는 했는데, 다들 저녁을 숨죽이며 고기를 즐기는 시간이 되니 유독 그 사이트의 소리만 캠핑장 전체를 특히 바로 옆에 위치한 저희 사이트에 크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후부터 지금까지 엄마, 아빠들은 술판을 여전히 벌이고 있고, 아이들은 한쪽에 모여 핸드폰을 몇 시간째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이들을 저렇게 핸드폰만 시키려고 돈 들이고 시간 내서 캠핑장 왔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가 집에만 있으면 핸드폰 게임만 하려 해서 게임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주말이면 캠핑장이나 인근 공원으로 데려가는데, 저렇게 아이들을 방치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한 아저씨들은 반 욕설에 가까운 표현으로 거친 말들을 아이들이 있는데도 서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고, 아주머니들은 그런 아저씨들을 제지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자기들끼리 신나서 고막을 괴롭히는 째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오후보다 더 크게 들리기에 저도 아들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들 퇴장시켜! 레드카드!!" 라며 화가 나 있는 아들에게 아직 매너 타임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며 저희 부자는 좀 조용해질 매너 타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게 먹은 저희 부자는 선선한 가을 날씨를 즐기며 불멍을 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옆 사이트의 술판은 끝나지 않고, 아이들은 거의 오후 3시부터 8시가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나란히 모여 앉아 휴대폰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고구마,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듣고, 학교와 친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때 충격적인 모습을 또 보게 되었는데, 남자아이 하나가 엄마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니 엄마는 '아빠한테 같이 가자고 해.' 하며 귀찮다는 듯이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고 술에 취한 아빠는 처음에 '너 다 컸으니 혼자 가!" 이러다 아이가 혼자 가기 무섭다고 하니 옆을 두리번거리더니 빈 페트병을 들고 아이 바지를 벗기고 "여기에 싸."라고 합니다. 


아이가 바지를 내려 엉덩이까지 보이며 소변을 보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화장실이 도대체 얼마나 멀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사이트에서 화장실은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요. 그리고 그 소변이 든 페트병을 다음 날 아침 사이트 뒤편 풀숲에 버리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하아..


이제 매너 타임이 되자 더 불멍을 하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자기 위해 텐트로 들어갔습니다. 아이와 함께 불멍을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매너 타임이기도 하고 저희에게는 내일 또 다른 새로운 일정이 있어 아이를 설득하고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옆 사이트는 매너 타임이라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용해진 캠핑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캠장이 와서 몇 번 주의를 주고 갔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싫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귀마개를 끼워주고 시끄럽고 귀마개가 불편하다는 아이를 어렵게 재웠습니다.


시간이 12시를 넘었어도 여전히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소심해 남의 일에 참견을 잘하지 않고, 웬만하면 참고 견디는 인내심이 강한 불의를 보면 과감하게 피해 가는 성격이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텐트 밖으로 나갔을 때 그 사이트의 아이들은 화로대 근처에 모여 앉아 여전히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이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한쪽에서는 아주머니 두 분이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충격적인 비주얼로 (제가 탈모를 숨기기 위해 삭발을 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평소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이번에는 모자를 벗고 갔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일단 화로대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핸드폰 소리 줄여."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 뒤 구경거리가 난 것처럼 저를 바라보는 어른들에게 "지금 몇 시인데, 아직까지 이러고 있으십니까.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 보려고 캠핑 왔는데, 이거 너무하네."라고 했습니다. 


하긴 그동안 제가 6개월간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이제 새로운 일에 도전을 시작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긴 합니다. 저를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약간 당황한 것이 느껴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하고 싶었지만, 욕은 18세 이후로 끊었지만, 외모가 이미 충분히 충격적인 욕설인 저는 최대한 공손하게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이제 정리하고 자야지.' 하며 아이들을 부르고 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잠이 들었으면 그나마 견딜 수 있는 빌런인데, 제가 역대 만난 빌런 중 최고라 하는 이유는 다음날 아침 6시 40분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그때 제가 시끄러워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이 되었을 때 아주머니들이 덜거덕 거리며 소리를 내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시끄럽게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소음공해는 어제와 반복되었고,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들이 그 시끄러운 술자리와 아이들 핸드폰 방치가 다행히도 밤 10시에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을의 연휴에 아들과 함께 한 캠핑은 그 빌런 무리들 때문에 망치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 글을 그 무리가 읽으신다면 세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제발 아이들을 캠핑장에서 핸드폰만 던져두고 방치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제발 다른 캠퍼 배려라는 것을 좀 부탁드립니다. 대화 중에 밖에 나오니 이웃 눈치 보지 않고 늦게까지 놀 수 있으니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캠핑장에서도 제발 눈치라는 것을 좀 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냥 캠핑 다니지 마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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