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성이 Aug 19. 2022

캠핑은 시끄럽다?

지난 6월 캠핑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원래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미즈 캠핑을 처음으로 도전하기로 했는데, 출발 당일 아이가 갑자기 아빠 없이는 '캠핑을 절대 안 간다! 아니 못 간다!"며 거실 바닥에 누워 "배 째! 등따! 소금 쳐!"를 시전해 "역시 아빠 생각해주는 건 아들밖에 없구나" 하는 마음으로 캠핑을 떠났습니다.


덕분에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술과 넷플릭스를 즐기려는 저의 계획은 무산되었지만요. 아오.. 효자 새끼..


아이의 학원 때문에 조금 늦게 출발한 탓에 오후 6시 정도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저희 양 옆과 앞쪽에 벌써 다른 캠퍼 분들이 자리를 잡고 벌써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텐트를 설치하며 살짝 양 옆을 살펴보니 불안이 영혼을 슬슬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텐트 기준으로 왼쪽으로 20대 중후반 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 4명 그리고 오른쪽에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3명을 바라보며 '이러다 포천의 잠 못 드는 밤'이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대로 젊은 청춘들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최신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고, 아저씨들도 젊은이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추억의 90년대 가요를 크게 틀고 서로 맞불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쪽에서는 할머니를 포함한 일가족이 왔는데, 가족에게 저녁 준비를 진두지휘하는 할머니의 우렁찬 목성이 양쪽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나오는 노래마다 가수의 성별을 따지지 않고 떼창을 하고 있었고 (하지만 랩 부분이 나오면 신기하게도 모두 침묵에 빠졌습니다.) 아저씨들은 제가 대학시절 열심히 들었던 추억의 90년대 가요를 들으며 추억을 회상하는지 강남의 락카페, 대학로에서 술 먹으며 헌팅했던 이야기 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 사이트의 할머니께서는 "너는 빨리 숯불에 고기 굽고, 그리고 광어, 광어 사 왔냐?" 라며 오늘 저녁 메뉴가 숯불에 구운 고기와 광어회라는 것을 주변에 널리 알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이트의 음악과 고성이 절정의 순간을 맞이한 것은 바로 그 아저씨들 사이트에서 버즈의 <가시>라는 노래가 재생되고, 청춘들의 사이트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던 빅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거의 비슷하게 재생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아저씨들 아니 친구들아.. 제발 버즈의 <가시>를 따라 부르지는 말아줘..' 라며 마음속으로 연신 외치고 있었지만, 제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한 아저씨의 '너 없는 지금도~'를 시작으로 잠시 후 중년 남성들의 트리오 중창단 모드를 시작했고, 빅뱅의 멤버 숫자까지 딱 맞춰 캠핑장에 온 청춘들도 아저씨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 사이트의 할머니께서 이번에는 '초장 어딨냐? 초장?' 이러며 초장을 애타게 찾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오랜만에 캠핑장을 찾은 멍멍이들과 (이곳은 애견 동반 캠핑장이었습니다.) 산속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새들까지 합세한 브레멘 음악대까지 함께 가세하니 여기가 캠핑장인지 요란한 음악과 고성이 섞인 시골 장터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기를 자르는 가위를 들고나간다면 엿장수로 보이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아들은 캠핑 와서 기분 좋다고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방송댄스를 열심히 추고 있고요. 허허허...


혼돈의 카오스를 겪으며, 이번 캠핑이 결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버뮤다 삼각지대보다 더 공포스러운 소음과 괴성의 삼각지대에 완벽하게 갇힌 저희 가족은 여러 소리를 믹스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중저음이지만 가끔 찢어지는 괴성을 지르는 3인조 남성 중창단과 자신들은 감미로운 목소리라 생각하지만 저희에게는 성대를 쥐어짜는 듯한 4인조 보이그룹의 노랫소리에 가끔 한 번씩 할머니께서 추임새를 넣으시며 피처링을 해주고 계셨습니다. 


"그대 기억이 지난 쏴랑이 내 안을 파고드는 쌈장 하고 초장 어딨냐?"


"언젠가 다시 올 그날 그때를 위하여 몸에 안 좋은 햇반은 왜 먹냐! 밥 해라. 어서 밥 해라!"


"미취도록 너를 그리워했던 와리바시는 몸에 안 좋다! 쇠 젓가락 가지와라!"


"제껴라 제발 가라고 제껴라 아주 가라고 제껴라 근데 묵은지 없냐? 묵은지가 있어야 맛있지!"


그동안 캠핑 다니며 김광석 노래를 8시간 동안 부르는 아저씨, 여자 아이돌 노래를 무한 재생하는 청춘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같은 시간 동시 다발적으로 중창단 모드와 여자 아이돌 노래를 떼창 하는 청년들과 그들에게 지지 않는 우렁찬 목소리의 할머니를 한 번에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주 다행히 매너 타임에는 귀신처럼 조용했지만, 다음날 오후에도 중창단과 보이그룹의 와사비 보다 맵고 염산같이 독한 공연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버즈 노래 메들리를 애타게 외치던 중장년 합창단의 그분들은 다음날 회사에서 목이 안 아팠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거리두기도 완화되고 날씨도 점점 풀리면서 더 많은 분들이 캠핑장에 찾아오는데, 음악 듣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건장한 사나이들이 여자 아이돌 노래 떼창과 본인이 소화하지 못하는 노래는 좀 자제하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정말 고마운 건 임재범 님의 <고해>를 부르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만일 "어찌할까요?" 이런 소리가 들렸다면 아마 제가 그들을 어찌하러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항상 즐거운 캠핑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7화 캠핑에서 만난 강력한 빌런 무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