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입니다.
아침부터 학교 가기 싫어하며 오늘 하루는 놀고 싶다고 애원하는 아들을 보고 와이프와 함께 오늘 하루 학원을 제끼고 당일 캠크닉을 떠나는 깜짝 이벤트를 준비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집 근처에 있는 지자체 캠핑장에 자리가 있어 서둘러 예약한 뒤 학원을 가려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 앞에 '짠!'하고 나타나니 아들은 "아니 이 아저씨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왜 나와?" 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당일치기 캠핑 가자!라고 했더니 기뻐 날뛸 줄 알았던 아들이 의외로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제가 "왜 캠핑 가는 게 싫어?"라고 물으니 아들은 "캠핑 가는 건 너무 좋은데 잠도 안 자고 오는 건 너무 싫다."라고 하네요. 그래도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기에 아이를 설득하고 저희 가족은 간단한 짐만 준비하고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 캠핑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희와 비슷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 이것저것 음식 보따리를 풀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조용히 낮술을 즐기시는 아저씨들과 문제의 부부동반인지 무슨 모임인지 8명이 모여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가 3시 무렵이었는데 벌써부터 술이 얼큰하게 취하셨는지 고성이 오가며 껄껄, 까르르 웃으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다행히 저희와는 좀 거리가 있어서 괜찮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간단하게 타프만 치고 아이와 잔디밭에서 캐치볼도 하고 연도 날리고 놀았습니다. 이제 제법 공도 멀리 던지고 연도 혼자 날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곧 훌쩍 커서 아빠보다 친구들을 더 찾는 나이가 올 텐데 그전에 아이와 더 많이 놀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뛰어놀더니 간식이 먹고 싶다는 아들의 손을 잡고 저희 사이트로 오는데 그 문제의 술판을 벌이시는 분 중 남자분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캠핑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니 저 진상들.." 하며 지나치려 하는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엄마를 닮은 바른생활 대신 2학년 과정을 열심히 수료하고 있는 아들이 "아빠 저 아저씨들 캠핑장에서 담배 피워! 캠핑장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되잖아."라고 말하고 그 아저씨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돼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 저희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체 여전히 자기들끼리 술을 마시며 담배를 계속해서 피고 있었고, 이번에는 제가 "저기 여기 캠핑장은 전 구역이 금연 구역이에요. 아이들도 많이 있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뭔가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처럼 약간의 짜증을 내며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사과나 어떤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다시 술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저희 사이트로 다시 가는데, 어렴풋하게 "내 돈 내고 와서 담배 하나도 못 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기분이 살짝 나빠졌고, 관리사무소에 주의를 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 캠핑장에서 겪은 좋지 않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기분 좋게 캠핑 와서 서로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우던 아줌마들, 주변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새벽까지 고성을 지르며 술판을 벌이던 젊은이들 등 집에서 가깝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예약이 힘들고 좋지 않은 추억 때문에 그동안 오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이 캠핑장에서 좋지 않은 추억을 적립하고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아이의 태권도 학원까지 건너뛰고 온 것이니 저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빨리 잊고 가족과의 시간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준비해 온 과자가 부족했는지, 아들은 제게 매점에 가서 과자를 더 사 오라고 졸라 매점을 가는데 그 문제의 무법자들이 이번에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불의를 보면 분노하며 '이번에만 참는다!" 라며 피해 가는 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저기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말했을 때 담배를 당당히 피우고 있던 아저씨 한 분이 정말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제 쪽으로 오며 "이거 전자 담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고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저는 그동안 각종 유형의 직장상사들을 거치며 어벤저스 멤버로도 영입될 만한 분노 조절과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에 차분한 목소리로 "전자 담배도 담배예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여기는 전 구역이 금연구역이고요. 담배 피우시려면 캠핑장 밖에서 피셔야죠."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말을 했을 때 그 아저씨는 "아니 이건 전자담배라니까!" 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나머지 일행들도 그 아저씨 편을 들며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하지 않는데 저만 너무 나댄다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기분 나쁜 건 저는 존댓말을 쓰며 말하는데 이 분들은 제게 계속 반말과 빈정거리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1대 8로 싸우다 오늘 이 자리에 내 묘비석을 세우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전자 담배도.." 라며 말을 꺼내는데 저희 사이트 근처에서 두 분이 조용히 술을 드시던 아저씨들이 오셔서, "아까부터 참았는데, 아이 아빠가 틀린 말 한 거 없잖아!"라고 하신 뒤 결코 브런치에 쓸 수 없는 걸쭉한 욕설을 날리셨습니다. 그러며 제게 아이 아빠는 가던 길 가라고 정중하게 제게 말씀하시며 이제 자신들이 해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전쟁이 났을 때 지원군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며칠간 꽉 막혀있던 화장실 변기가 뻥 뚫릴 때 그 쾌감이 느껴졌고, 이제 3대 8이니까 해볼 만하겠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머릿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데, 담배 피우던 분들이 광기를 부렸다면 그 모습을 보며 꾹꾹 참아온 아저씨 두 분은 진짜 광기가 뭔지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 남자는 담배 피우던 분들의 사과와 함께 정의 구현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들은 제게 "저렇게 말로 통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예의 갖추고 좋게 말할 필요가 없어요. 아주 공개적으로 망신을 줘야 자기들이 망신당할 짓을 했다는 것을 안다니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매너 타임에 다른 캠퍼들 배려 없이 시끄러운 분들, 내 사이트를 가로질러 대항해를 시도하는 콜럼버스 같은 분들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담배를 당당히 피우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도 담배를 피우지만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정말 부끄러운지 아시고 앞으로는 그러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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