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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Jul 11. 2022

36년 전, 아버지의 편지

저희 아들은 지금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벌써 부장님 개그를 좋아하고, 파충류와 곤충을 친구 아니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 아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아빠와 함께 캠핑을 다니는 것입니다.


제가 이 아이와 열심히 캠핑을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아빠들이 그러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고,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탓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날은 아버지께서 오시는 매주 수요일이었는데, 그때 아버지와 목욕탕도 함께 가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함께 조립하고 잠들기 전에 누나와 나란히 아버지의 팔을 베고 잠들었던 것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청소를 하다 우연히 30여 년도 더 전, 제가 아들 나이에 썼던 먼지가 수북이 쌓였던 일기장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제가 국민학생이었던 시절 검은 공책에 아버지께서 직접 앞 면을 써주신 일기장을 펴 보았습니다.


일기 첫 장부터 뽀로로와 친구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놀았던 이야기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장에는 까불다가(정확히 제가 까불어서 엄마한테 야단맞았다. 이렇게 썼네요..) 어머니께 혼난 이야기, 그리고 거의 매일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나마 멀쩡한 날 썼던 평범한 일기입니다. 일기장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제 모습에서 지금 아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역시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틀린 게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커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아이는 지금 대머리 아저씨가 되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허허...


지금은 일반 가정집에서 듣기 힘든 아이들의 매 맞는 소리를 일기에도 썼었네요. 그게 무슨 특별한 이벤트라고.. 그러고 보니 저도 친구와 놀다가 코피를 쏟게도 하고 (아니 도대체 뭐를 하고 놀았길래!!) 울거나 떼쓰는 것이 주특기인 시절이 있었다니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대책 없는 장난꾸러기였나.' 하는 마음으로 현재 장난꾸러기인 아들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일기장을 펼쳐보다 일기장에 붙어있는 낡은 편지지를 보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 낡은 편지지는 바로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께서 제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한 장, 그리고 제 생일에 한 장 보내주신 편지인데, 36년이 지나 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읽으니 떨어져 지내기는 했지만, 아버지께서 저를 얼마나 아끼시고 사랑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늘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게 해'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셨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제게 세상에서 가장 키도 크고 힘도 세며 멋있는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철이 들 무렵부터 아버지께 반항하기 시작했고, 대학을 입학했을 때부터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잘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하며 지낸 시절도 있었습니다. 점점 아버지와는 보이지 않는 큰 벽을 쌓고 몇 년을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벽이 있었던 아버지와 관계가 다시 좋아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고 나서부터 였습니다. 언제나 가장 힘센 남자로 기억에 남아있던 아버지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셨고, 결국 다른 사람의 부축이 없으면 일어서기도, 걷기도 힘들어하셨습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며 저를 볼 때마다 '아들에게 짐이 돼서 미안하다.'라는 말씀을 하는 아버지에게 제가 철없던 시절 아버지께 했던 상처를 드린 말과 모든 행동들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아버지가 정말 밉고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버지가 저의 짐이 아닌 언제나 제가 아버지의 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긴 투병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손자와 자식들에게 힘든 모습보다 암을 이겨내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아버지께서 떠나신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세 살 아이는 이제 아홉 살 어린이가 되었고, 저는 사는 게 바빠서 명절 때를 제외하면 아버지를 찾아뵙지도 못하고 가끔 아버지를 떠올릴 뿐입니다.


아들과 단 둘이 캠핑을 다닐 때마다 제가 가장 함께 캠핑을 가고 싶은 사람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바 아버지입니다. 제가 직접 설치한 텐트에서 아버지와 저 그리고 아들까지 3대가 함께 자고도 싶고, 맛있는 고기도 구워드리고 싶고, 함께 불멍 하면서 옛날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 손을 잡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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