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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Nov 25. 2022

역시 캠핑에서는 '수블라키'

9살 아들과 단 둘이 캠핑을 다니는 제게 가장 큰 고민은 "캠핑에서 이 아이에게 도대체 뭐를 먹여야 하나"입니다.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때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빠가 주는 음식은 (음식이라 하고 삼겹살이라 읽습니다.) 모두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는데, 좀 컸다고 이제 좀 컸다고 아빠가 주는 음식 (음식이라 하고 삼겹살이라 발음합니다.)에 대한 반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다 캠핑 유튜버들 때문인데, 캠핑장에서 5성급 호텔의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을 뚝딱뚝딱해내는 영상을 보더니 "왜 우리는 캠핑 가면 이런 음식만 (음식이라 하고 삼겹살이라 씁니다.) 먹는 거야! 나도 저런 음식 먹고 싶어." 하며 집에서 하지 않던 음식 투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을 위해 삼겹살을 포기하고 색다른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감자전 = 대참사, 카레 = 이게 똥인지 카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괴작 탄생, 조개찜 = 아빠 조개에서 돌 나와.. 퉤.. 등 실패만을 반복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믿으며 언제가 아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낼 것이라 믿었지만, 제게 성공이란 자식을 버린 매정하고 냉정한 어머니였는지 성공의 순간은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를 안타깝게 생각한 요리사 친구가 라면만 끓일 줄 알아도 할 수 있는 요리라며 알려준 레시피가 바로 까르보나라 떡볶이였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레시피는 참 간단했습니다. 1. 약간 움푹 파인 프라팬에 베이컨 (없으면 스팸이라도), 양파를 잘게 썰고 버터에 볶는다. 2. 어느 정도 베이컨과 양파가 익으면 우유를 넣고 끓인다. 3. 어느 정도 끓어오르면 떡을 집어넣고 계속 끓인다. 4. 떡 하나를 집어 먹은 뒤 '호오, 이 정도면 쫄깃하고 먹을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 치즈 2장을 넣고 조금만 더 끓인 뒤 접시에 옮겨 담는다. 5. 너는 요리하는 것도 젬병, 요리를 그릇에

옮기는 것도 젬병이니 괜히 플레이팅 같은 거 하다가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을 익히는 차력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밥그릇에 덜어줘라.


그렇게 저는 아들과 단 둘이 캠핑을 갔을 때 친구가 매뉴얼 그대로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만들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내밀었습니다. 고든 램지에게 요리한 음식을 평가받는 헬's 키친에 나오는 출연자보다 아마 이 순간만큼은 제가 더 긴장했을 겁니다.

까르보나라 떡볶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부성애의 결정체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떡 하나를 입에 넣었을 때 의심의 표정에서 '오! 이거 견딜만한데 아니 맛있는데!' 하는 감탄의 표정으로 바뀌더니 "아빠! 아빠가 그동안 해 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어!" 라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눈물이 나려 하네." 제 심정이 딱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다양하게 망쳤던 음식들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뒤 '드디어 성공했다!'라는 감동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뒤 저는 아들과 캠핑을 갈 때마다 꼭 한 끼는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먹였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 질린다고 어제 아들은 12월에 가는 캠핑 때 까르보나라 떡볶이가 아닌 색다른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빠, 우리 이번에 캠핑 가면 떡볶이 말고 다른 거 해줘!"


"어떤 거? 삼겹살?" 


삼겹살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들이 표정을 찡그립니다. 


"삼겹살 말고. 수블라키!"


수블라키?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음식의 이름이었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수블라키'가 뭐야?라고 묻자 아들은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아빠 그건 그리스의 전통 음식이야. 검색해 봐!"라고 했습니다.

검색해서 보니 이건 뭐 그냥 꼬치였습니다. 

꼬치 아닙니다. 수블라키 입니다.

"이거 그냥 꼬치네, 고기하고 채소 꽂아서 구워 먹는 거 아냐."


"꼬치 아니라니까! 수블라키라니까! 나 이거 해 줘."


아들은 꼬치가 아니라 수블라키라고 계속 우기는데, 도대체 꼬치와 수블라키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고기와 채소를 꼽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돈가스 소스를 살짝 바른 뒤 굽기만 하면 될 거 같습니다.) 아들에게 흔쾌히 "그래! 다음 캠핑에는 수블라키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신이 나 다음에 캠핑 가는 그날이 기다려진다며 우리는 특이하게 소시지와 떡을 함께 넣어 소떡소떡 수블라키를 만들어 먹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역시 캠핑에서는 수블라키지!" 라고 제 옆에서 빨리 캠핑 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 캠핑에서는 꼬치 아니 수블라키지.."


하아.. 아들아.. 수블라키나 꼬치나 그게 그거야.. 


그래도 아들의 환상을 깨면 안 되겠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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