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

by 이현주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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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변하 듯 나도 꽤 많이 변했다. 낡고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며 때론 부서져 위험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쥐들이 쿵쾅거려서 지붕 밑으로 근질거려 혼이 났다. 이제는 장남이 내려올 날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일순 씨만이 아니었다. 그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서울에서 무척 바쁜 거 같았다. 일순 씨는 모르는 모양인데, 서울에서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 걸 들었다. 자식들은 늙은 어머니가 놀라실까 봐 쉬쉬했다. 장남은 독한 약을 먹고 버텼고, 그 덕분에 그나마 있던 살은 사라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마당에 간간히 숨을 붙이고 있는 가죽나무 같겠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이 곧 내려와 사람을 불러 나의 뼈대만 남기고 새 옷을 입혀 준다고 했다. 곧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과 함께 장남이 왔다. 내가 생각한 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는 오자마자 숨돌림 틈도 없이 일을 했다. 안방에는 기름보일러를 넣어 더 이상 구들장에 그을린 장판을 볼일이 없어졌고, 가마솥이 있던 자리도 시멘트로 막았다. 아궁이의 재가 덕지덕지 붙어 칠흑 같던 정지(부엌)에는 거실이 생기고 신식 가전들로 깔끔하게 채워졌다. 그리고 주방 한편에는 실내에서도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끔 화장실을 들여왔다. 또 오래된 마루에는 새 나무판을 깔고 칠을 해서 윤기가 흘렀다. 나의 머리, 지붕도 하늘색을 닮은 고운 파랑으로 얹어 주었다. 그 속을 헤집고 다니던 쥐 가족들도 그 날로 이사를 가버렸다.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깔비(솔가리)들과 밤송이가 뒤엉킨 버려진 축사를 부셨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두 채가 더 있던 집중에 별채도 없애버렸다. 그는 낡아서 골칫덩이던 건물들을 정리해서 무척 기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난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물던 도깨비의 혼이 흐려지는 걸 봤다. 나에게 사람처럼 입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에는 잔디가 깔렸고 축사를 부순 자리는 텃밭이 생겼다. 그리고 땅을 파다가 나온 바위가 가죽나무 아래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성인 두 명이 다리 뻗고 누울 정도의 너른 바위였다. 앞으로 이 집안의 가족들이 좋아해 줄 모습을 내심 기대하고 있나 보다. 난 나의 동생 별채와 이별을 했고 장남은 그 후로 건강을 되찾아 위암과 이별을 했다. 처음과는 모양이 변했지만 용석 씨의 손길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모습도 썩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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