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족, 그리고 홈퍼니싱과 홈루덴스
'달고나 커피 만들기'를 기억할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싸, 아싸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집에 강제로 머물러야 했던 지난 2020년, 사람들은 집에서 머무는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400번 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 1,000번 저어 만드는 수플레 오믈렛 등, 어떻게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들을 찾아냈었다. 곧 끝날 것 같던 코로나가 벌써 3년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집에서 뛰쳐나가는 대신 집을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 집에서 사는 사람들, '호모집쿠스' 트렌드로 이어졌다. 홈족과 홈퍼니싱, 홈루덴스까지, 오늘은 트렌드로 떠오른 호모집쿠스로 인해 달라진 소비 시장, 그리고 호모집쿠스를 타깃을 한 마케팅들을 살펴보겠다.
홈족(Home族)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뜻하는 홈족(Home族)은 지난 2018년 즈음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 코로나19가 터지며 홈족은 선택이 아닌 강제가 되어버렸다. 홈족에 대한 인식도 히키코모리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점차 집에서의 시간도 알차게 보내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뀌게 되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한국방송진흥공사(코바코)가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스스로를 홈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전체의 48%로, 절반 가까이 되며 이 중 2030 젊은 세대가 특히 홈족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조사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 활동이 어려워진 이때 젊은 세대들은 안 되는 일에 연연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즐거움을 찾으며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킨 것이다.
홈퍼니싱(Home + Furnishing)
호모집쿠스들이 먼저 관심을 가진 대상은 '홈퍼니싱'이다. 홈퍼니싱은 집을 의미하는 '홈(Home)'과 (집 또는 방 등의) 가구, 관련 소품들의 비치를 의미하는 퍼니싱(Furnishing)을 합친 신조어로, 간단히 말해 '집 꾸미기'를 말한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호모집쿠스들은 집 자체를 꾸미는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홈퍼니싱 트렌드가 떠오르며 크게는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작게는 인테리어 관련 소품 관련 기업들의 매출이 급증했다. 국내 인테리어 및 가구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 '한샘'은 지난 2020년 2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5.9%나 증가했으며 이중 리모델링 패키지 판매를 책임지고 있는 리하우스 사업의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다고 한다. 홈퍼니싱을 위한 가구, 소품 등을 판매하는 이케아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32% 이상 매출액이 증가했으며 이커머스 채널의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오프라인 소비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플랫폼인 오늘의집, 집꾸미기 등도 2020년부터 눈에 띄는 거래액 증가를 보였다.
2008년 7조 원대로 추산되던 홈퍼니싱 시장은 다가오는 2023년 18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관련 기업들은 트렌디한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서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이케아, 한샘 등은 각각 자체 라이브 커머스 채널 '이케아 라이브', '샘LIVE'를 런칭하여 자사 제품 소개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노하우, 실제 인테리어 사례 등의 홈퍼니싱족들이 관심 있을 만한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롯데홈쇼핑, CJ온스타일 등의 홈쇼핑 기업들은 각각 '까사로하', '앳센셜' 등의 자체 리빙 상품 전문 브랜드를 만들어 세분화된 전문성 강화에 힘을 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현대백화점, 한샘 등에서는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을 활용해 제품을 3D 모델링으로 배치해 보거나 리모델링 공사 완료 시 모습을 가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온라인 체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홈루덴스(Home + Ludens)
앞서 언급했던 달고나 커피, 수플레 오믈렛 등은 사람들이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들을 어떻게든 즐겁게 견뎌내기 위해 만들어낸 놀이였다. 이러한 개별 놀이들의 유행은 금방 지나갔지만 집에서 놀고 즐기는 홈루렌스는 대세가 되었다. 홈루덴스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요한 하우징아(Johan Huizinga)가 주장한 개념인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에 '호모'를 '홈'으로 변경해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기는 인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홈루덴스는 코로나 이전에도 주목받는 새로운 개념이었는데,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홈루덴스족으로 정의하며 다양한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OTT 서비스다. 엠포스 빅데이터팀 데이터랩에서 지난 2021년 11월 발표한 리포트 '코로나 이후 영화·OTT 컨텐츠 관심 변화'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OTT' 언급 양은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 3월, '영화관' 언급 양을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을 증가했다. 이는 문화 컨텐츠를 즐기는 주요 서비스가 '영화관'에서 코로나 이후 어디서나, 특히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OTT'로 변경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전 세계 OTT 중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는 2018년 1억 1000만 명 수준에서 지난해 3년 만에 2억 400만 명으로 2배 가까이 유료 구독자가 빠르게 늘었다.
OTT 못지않게 디지털 컨텐츠 시장도 홈루덴스의 영향을 받은 산업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독서량 자체가 늘어났다고 한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발표한 '독서문화 관련 인식 조사'를 살펴보면 전체 설문자의 46.9%가 코로나 이후 독서량이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전체 설문자의 45.9%는 독서량 증가의 원인으로 '코로나로 인해 집에 오래 있게 되었기 때문'을 꼽았다. 이는 E-book, E-book 구독 서비스 등 디지털 컨텐츠 관련 기업들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국내 최초로 E-book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밀리의 서재'의 경우, 지난 2017년부터 약 3년 사이에 매출이 약 200배 성장했다고 한다. 전자책 외에도 웹툰, 웹소설 등의 다양한 디지털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리디북스의 '리디' 역시 지난해 1~3분기 누적 매출 1491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었다.
이외에도 카페 대신 '홈카페', 운동도 집에서 '홈트레이닝', 셀프 네일아트, 피부관리 등의 '홈뷰티'까지. 기존에 즐겼던 오프라인 활동들을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련 서비스와 용품들도 크게 소비가 증가했다. 마켓컬리가 지난 2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홈카페 상품들의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전동 커피 그라인더, 우유 거품기 등 홈카페 관련 가전제품은 지난해 2019년 대비 판매량이 25배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롯데네슬레 코리아와 공차는 집에서도 카페처럼 즐길 수 있는 스틱형 상품들을 출시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헬스장 등이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며 운동 역시 집에서 '홈트레이닝'으로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랜선 퍼스널 트레이너를 제공하는 하우핏 등의 신규 서비스들이 앱으로 출시되었다. 또 반대로 집에서 혼자 운동을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운동하는 듯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야핏과 같은 커뮤니티형 홈트레이닝 서비스도 주목을 받았다.
호모집쿠스의 영향으로 달라진 소비 그리고 마케팅 이슈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나 많은 분야가 영향을 받았지만 아직 살펴보지 못한 분야가 더 있다. 집콕족들은 집을 꾸미고, 집에서 놀기도 하지만 기존에 오프라인에서 주로 이뤄졌던 다양한 경제활동들도 집에서 하고 있다. 다음 호모집쿠스 2편에서는 호모집쿠스들의 집에서 하는 경제활동, 홈코노미와 홈코노미로 영향을 받은 분야들을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