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날

2005년 07월 05일

by 전구

잘그락 달그락-

머리를 올다가 내렸다

라운드 티를 입었다가 브이넥 티를 입었다가

빨간 립밤을 발랐다가 지웠다가-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에 공을 들인 지

벌써 몇 시간 째


별 소득 없이 진만 빠져버린 나는

목에 걸린 금 목걸이를 르며

옷이 가득 쌓인 침대 위로 털썩 앉았다.


"하여간 아부지 취향은 너무 클래식해."

나는 목걸이를 눈앞으로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엄지손톱만 한 하트 모양에

촘촘히 박힌 분홍색 큐빅,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거리는

또 다른 작은 하트가

전반적으로 요즘 취향은 아닌

노란색 금 목걸이.


리고 이 목걸이 뒷면에는

'내 사랑 지영에게 2005년 7월 5일'

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문구에 적힌 날짜를 보면

17년 전 내가 중학생던 무렵

버지께 받았던 선물 것 같았다.


10대 에는

액세서리가 금지였던

학교 규칙 때문에


20대 에는

내 취향을 찾아 이런저런

액세서리를 하던 탓에


30대에 들어서는

살이 여린 아기에게 혹여나

상처가 생길까 봐 액세서리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렇게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금은방에서 산 것 같은,

그야말로 클래식하고 엔틱 한

아버지 취향의 금목걸이는

내내 서랍 깊은 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오늘.


청소를 하다 몇십 년 만에 문득 마주한 금목걸이는

나를 단단히 홀려 몇 시간 거울 앞에서 몰두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금목걸이인데

디자인이 내 취향은 아니어도

일단은 하다 보면 좀 익숙해지려나 싶어

니 바라보던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었다.


목 언저리까지 늘어난 흰 티 덕분에

더 눈에 띄는 금목걸이를 보니

애써 차려입는 것보다 그냥 이대로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2005년 7월 5일...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날인지 모르겠다.


내 생일은 10월이고

7월이라면 둘째 동생 생일이긴 한데

그 조차도 날짜가 맞지 않는다.


아버지가 내 생일을

동생 생일과 헷갈리신 건가?



뿌에에에에엥-----

정신 차리라는 듯

낮잠에서 깨어난 아기의 울음소리에

나는 어질러진 옷 가지 위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아기에게 달려갔다.


"엄마 여기 있는데~ 어! 저게 뭐지?

거울 속에 엄마가 있네?"

서럽게 우는 아가를 안고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연신 까꿍 놀이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웬만해서는 울음을 잘 그치는 아기인데

오늘따라 뭔가 맘에 안 드는지

울음이 전혀 잦아들지가 않았다.


띵동 딩동동~ 띵동동동동~

결국 손에 쥔 스마트폰

급한 대로 아버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본다.


회사 업무가 바빠도 손녀의 전화라면

그냥 넘기는 법이 없 할아버지.


그걸 알기에

하루에 한 번은 걸게 되는 영상통화.


아기도 그걸 아는지 할아버지를

아빠만큼이나 친근해한다.


"아고 우리 뚱순이! 왜 울어 엄마가 울렸구나!"

손녀를 뚱순이라 부르는 아버지는

오늘도 역시 함박웃음이다.


"할아버지! 엄마가 울린 거 아니에요~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운 거예요~"

나는 15개월 아가로 빙의해 할아버지의 말을 정정했다.


"우리 뚱순이 밥은 먹었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아버지는 물었다.


"그럼요 밥 한 그릇 먹고 낮잠까지 잘 자고 일어났죠.

아버지는요? 식사하셨어요?"

나는 다시 아버지의 딸로 돌아와 물었다.


"곧 먹어야지~ 너도 밥 챙기고.

오~! 뚱순이가 할아버지 주는 거야?

아이고 맛있겠네"

장난감 컵을 내미는 손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아버지는 내 안부도 잊지 않으셨다.


"아버지 있잖아 이거 목걸이요.

뒷면에 05년도 7월 5일이라고 쓰여있던데

그날이 무슨 날이에요?"

나는 손녀를 쫓느라 바쁜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보이며 물었다.


"목걸이? 아 그 목걸이! 7월 5일이라고 쓰여있니? 그날? 아무 날도 아닌데?"

아버지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엥? 혹시... 동생 생일이랑 제 생일이랑 헷갈린 거 아니에요?"

나는 나름 리하게 추리한 가설을 아버지께 물었다.


"아니야 아버지가 어떻게 딸 생일을 헷갈리겠냐?

그렇지~ 뚱순아?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까꿍!"

아버지는 내 추리에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손녀에게 손짓을 했다.


"그럼 7월 5일이 무슨 날이에요?"

나는 궁금하게 만드는 대답에

살짝 약이 올라 아버지께 되물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날이야.

그때 당시에 문득 너한테 내가 아버지로서

해준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근길에 목걸이를 하나 사러 금은방에 갔었고

그때 금은방 주인이 서비스로 글자를 새겨 주겠다고 해서 새긴 거야."

아버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빠바-빠빠빠! 아빠!!"

아기가 내 품에서 마구 버둥거리며 대신 대꾸했다.


"아이고!! 아버지 이따 또 걸게요!

아가 할아버지 빠빠이 해!!"

나는 버둥거리는 아가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바닥에 이미 떨어져 버린 핸드폰을 향해 소리쳤다.


온몸을 한껏 활 모양으로 꺾던 아가는

바닥에 내려두니 금세 여기저기를 활보하며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해준 것이 없다고 느껴졌던 아무것도 아닌 날'


아버지가 덤덤히 뱉은 그 말을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이를 보며 곱씹으니

왠지 눈물이 핑- 도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목걸이를 선물해준 그날의 나라면

아마 '정말 아무 날도 아니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별 것 해주지 않고서

그냥 저절로 크는 아이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 덕분에 나의 매일은

소중하고 특별한 아무것도 아닌 날이 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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