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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May 09. 2024

너로 인해 내가 엄마로 성장할 수 있었어 - 2

너의 꿈을 이루는 날이 올거라 믿어

2015년 4월 어느 날


생각해보면 큰 아이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겨울에 시작한 피아노.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법도 한데 해가 지나도 그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엄마인 나는 염려되는 것 투성었다.

늦게 시작한 악기. 음악을 한다고 하면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데 그걸 뒷받침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들.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큰 아이와는 다르게 내가 의지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때의 나는 현실을 버틴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었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었지만, 그 때의 나는 하루를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웠다.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때 였다.

어느 날, 동네에서 알게 된 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도대체 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느냐고. 가끔은 감정을 드러내고 이야기해야하는데 너는 너무 모든 걸 숨기고 너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내가 거리를 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놀랬다.

나의 감정을 숨기려 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그걸 눈치채고 지적을 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나의 모습이 큰 아이에게 그대로 투영이 된 것일까.

아무런 감정없이 악보에 있는 것 그대로 연주하는 큰 아이. 그 조차도 나의 탓으로 느껴지고 이걸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음악을 하려면, 악기를 연주하려면, 예중을 가야한다고 하니까 준비를 시작하긴 했는데 과연 갈 수 있을지, 이 상태로 예중을 가면 잘하는 친구들 틈 안에서 이 아이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만 태산이었다.


입시는 치뤄졌고, 연주하고 나왔던 아이는 실수가 조금 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결과가 발표되는 날. 같이 준비했던 친구들은 모두 붙었다. 큰 아이만 떨어졌다.


여러 가지 말을 들었다.

큰 아이가 속했던 조가 잘하는 애들이 많이 몰린 죽음의 조였다더라. 큰 아이가 못하는 건 아닌데, 잘하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서, 만약 다른 조였다면 붙었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큰 아이가 연습하도록 나는 등 떠밀었어야 했나, 잠을 줄이고 연습하게끔 더 다그쳐야했나.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만나게 해줬어야했나. 선생님들은 훌륭한데, 내 아이가 부족했던걸까.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 순간이 버겁고 힘든건 우리 큰 아이인데. 내가 생각을 많이 해 봤자 내가 후회를 해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 없는데.


뭐라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불끄고 누워 울고 있는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니가 속한 조가 잘하는 애들이 몰려있던 조래. 조 운이 없었대.

엄마, 운도 실력이야.

3년 넘게 준비한 엄청 잘 하는 다른 아이도 떨어졌대.

그랬더니,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나를 위로하려는거야? 엄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이유야 어찌되었든 변하지 않는 건 내가 떨어졌다는 사실이야.

뭐라고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 상황을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는 건 이 아이다.

이 힘든 상황을 큰 아이는 홀로 오롯이 견뎌내야만 했다.

도전해서 얻어내지 못한 처음으로 겪은 실패다.


일주일을 그러고 있을수도 있다. 그나마 일주일은 짧고, 충격이 크다면 한달동안 힘들어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이틀쯤 지났을까.

큰 애가 이야기했다.

엄마..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건데, 내가 여기서 예중 떨어졌다고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그래서 고민이야.

나는 얼마든지 시간을 가지고 다양하게 고민하라고 했다.

그 다음 날.

할 수 있다면 예중 편입을 준비해볼까? 쉽지 않다고는 하던데.

되물었다. 예고를 목표로 하는게 아니고?

그랬더니 일단 예중 편입도 시도해보고.


예중에 떨어진 다른 친구는 음악을 계속 해야할지에 대해 1년을 고민하고, 3년을 고민하고, 길게는 5년도 고민한다는데, 큰 아이는 어릴 때 부터 가졌던 목표였어서 그런건지, 금새 털어내서 차선책을 고민하고 있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좀 더 답답한고 심난한 그 마음을 털어낼 수 있게 에버랜드에 가서 좋아하는 티익스프레스를 타자고 했더니, 흔쾌히 따라나섰고 두 번 타고 나서는 속이 후련해졌는지 피아노도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길이 있다 하고 그렇게 가야만 하는데, 어쩌면 그 길이 큰 아이와 맞지 않는건 아닐까 싶었다.

예중에서 떨어졌다고 음악을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걸 그 누구보다 빠르게 스스로 생각해냈고, 계속 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레슨의 우선순위가 예중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에게 치우쳐져 있었다. 잡혔던 레슨이 취소되는게 빈번하게 일어났다. 속상했다.

자격지심일수도 있겠지만, 마음먹은 아이의 의지가 꺽일것만 같았다.

그래서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예중에 들어가면 배운다는 음악이론 수업을 레슨받을 생각이 있는지 큰 아이에게 물었다.

관심이 있고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큰 아이가 초등학교 때 했던 오케스트라를 통해 알게 된 음악관련 일을 하는 분께 부탁드렸다. 혹시 음악이론을 꼭 입시가 아니어도 가르쳐주실 분이 계실지 알아봐 주실 수 있냐고. 집 근처에서 레슨하고 계신 분을 소개해 주셨다. 큰 아이와 함께 찾아가 인사했고, 그 분은 큰 아이를 보고 고민하시다가 레슨을 해주겠다 결정하셨다.


그런데 그 이후 코로나가 터졌다.

졸업식은 부모참여없이 아이들끼리 하게 되었고, 입학식은 진행되지 않았고, 학교는 수업 시작하는 날이 결정되지 않고 계속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음악이론 레슨은 선생님댁에서 하는 일대일이라 학교는 안가도 레슨은 계속 될 수 있었다.

학교수업은 코로나로 인해 여러 시행착오가 있는 중이었지만, 그 덕분이라고 해야할까 큰 아이는 화성학, 청음 등의 레슨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6개월 정도 지났을까, 큰 아이가 결정을 내렸다.

피아노전공에서 작곡전공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예중에 떨어진 이후 도무지 피아노와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긴 했다. 선생님을 바꾸고 레슨을 계속 받으면서도 머리로는 연습을 해야하는 걸 알지만 몸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야하려나.

예중에 떨어지고 나서 콩쿨에 나가 입상도 하고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경험도 갖게 됐었지만, 큰 아이는 도통 피아노와 가까 워지지 못하고 있었고, 음악이론을 차곡차곡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작곡에 대한 마음을 키우게 되었던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오히려 큰아이는 그 시간동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음악을 하고 싶은데 어떤 것을 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작곡을 하기로 한 큰 아이는 고2가 된 지금까지 작곡을 공부하고 있다.

고민 끝에 예고 진로는 포기하고, 일반고 음악중점반 작곡전공으로 진학하면서 적어도 내가 봤을 땐 정말로 만족스럽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는 피아노 연주가 다시 좋아지고 있다고까지 할 정도로 피아노에 대한 감정도 달라지고 있고, 1학년 때는 합창부 활동, 2학년 올라와서는 합주부 활동하면서 타악기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오히려 다양한 음악활동을 통해 큰 아이가 점점 더 그 음악이라는 범위 안으로 푹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아이 모습을 보면서 애태우기도 하고, 어떻게 해주지 못해 속을 끓이기도 하고, 아이를 대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어서 혼자 괴로워했지만, 내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스스로 길을 찾아 잘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저 한걸음 떨어져서서 응원만 해주면 됐다.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화내지 말고 그냥 그렇게 한걸음 떨어져 지켜보는 것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성장하고 큰아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꿈으로 차곡차곡 걸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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