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얼굴들

부족함은 늘 나보다 먼저 자랐다

by 리버티

Chapter 2. 결핍의 얼굴들


부족함은 늘 나보다 먼저 자랐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무엇이 부족한 사람인지를 먼저 배웠다.


외모는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을 판단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언어였다.



외모라는 첫 번째 결핍


학창 시절의 나는

작은 키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볼은 쉽게 달아올랐고,

사진 속의 나는 늘 어딘가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그 작은 결핍들은

말없이 나를 흔들며 따라다녔다.


나는 늘 내 얼굴을 탓했지만

그 속에는 사실

‘나를 모르는 친구들의 시선’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솔직한 눈빛은

종종 내 마음을 가만히 찌르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 시선을 감당할 만큼 단단하지 못한 아이였다.


엄마는 종종 말했다.

“볼이 빨간 게 건강해서 그래.”


그 말이 위로였는지,

그저 상황을 넘기기 위한 말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나는 그 말을 믿는 척하며

붉은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스스로를 달래는 법을 배워갔다.


사람은 처음 만날 때

말이나 글보다

먼저 ‘눈’으로 만난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외모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세상과 마주하는 첫 번째 옷이었고,

태도였고,

때론 방패였다.


그런데 부모님은 말했다.

“공부만 잘하면 돼.”

“꾸미는 건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아.”


그 말들은 내게 닿지 않았다.

근거 없는 위로는

반항심만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내가 느낀 결핍은

어른들의 충고로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 시절,

내 유일한 안식처는

동생의 옷장이었다.


엄마 몰래 사모았던

입지도 못할 옷들을 깊숙이 숨겨두고

한참을 바라보던 날들.


그 작은 공간은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되길 기다리는

아주 조용한 은신처였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지 못하는 마음,

내 즐거움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될까 두려워

자꾸 감추어야 했던 마음.


아마 그것도

그때 자라난

결핍의 또 다른 얼굴이었을 것이다.



비교의 시간은 오래 남는다


우리 집은

비교가 일상이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엔

집 안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고,

가까운 친척아이의 이름은

너무 쉽게 소환되었다.


“네가 4년제 대학을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 말은

겨울 공기보다 차갑고,

그 어떤 말보다

또렷하게 내 귀에 박혔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는 순간

내 마음이 먼저 무너질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숙모가 떠벌이던 말들은

엄마의 입을 통해 다시 돌아왔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말보다 행동을 믿게 되었다.


그해,

나는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우듯

책상 앞에 앉았다.


의욕도,

꿈도 아니었다.


그저

그 말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고2부터 시작한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그 막막한 분노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결국 나는

지원한 대학 모두에 합격했다.


누군가에겐 그냥 그런 결과였겠지만,

내겐 오래 붙잡혀 있던 숨을

드디어 내쉬는 순간이었다.


내게는

조용한 해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오래 머물지 않았다.


비교의 잔상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고,

모양을 바꿔

다시 마음을 두드렸다.



결핍이 나에게 남긴 것들


결핍은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늘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우리 집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안정적인 공무원 아버지,

가정에 머무는 어머니.


겉보기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묘한 모순의 결들이 자리했다.


아빠는 백화점의 반듯한 진열대를 좋아했고,

엄마는 악기와 사교육에 열성적이었다.


‘남에게 보이기에 단정한 삶’을

중시했다.


그 환경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높은 취향의 기준을 배웠다.


하지만 그 기준을

따라갈 능력은

내 것이 아니었다.


백화점에서 아이쇼핑만 하던 날들,

갖고 싶은 것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쉽게 손이 닿지 않던 순간들.


겉으로 보기엔 사소해 보였지만

어린 나에게는

묘하게 가슴을 긁어내리는

결핍이었다.


한 번 거절당한 부탁은

두 번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게 자존심이었는지,

체념이었는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였는지

그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결핍들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 중심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아주 이른 나이에

알았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 안의 그림자


우리 가족은

서로를 염려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체면,

시선,

예의.


그 모든 것들은

늘 나에게 먼저 요구되는

규칙처럼 작용했다.


집 앞 슈퍼에 가는 일조차

머리를 감고

단정히 옷을 갖춰 입어야 했다.


일상조차

누군가의 눈에 비치는 순간

‘집안의 얼굴’이 된다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고,

행동에 앞서

주변을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숨이 막히는 감각은

어린 마음에도

놀라울 만큼 정확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내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하지만 통금은 변함없었고,

집 밖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보고해야 하는

목록이 되었다.


대학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부모가 틀렸던 건 아니다.

그들은 그 방식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숨을 쉬고 싶었다.

조금 더

멀리 보고 싶었다.

조금 더

나답고 싶었다.


언젠가 나는 깨달았다.


이 집을 사랑하지만

이 집에서는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마음 한편에서

아주 작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문에는

아주 단단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유.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나는 자유롭고 싶었고,

그 자유를

내 두 발로

책임지고 싶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