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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n 22. 2023

남편의 동의어는 애증.

있어도 못살겠는데 없어도 못 살 것 같다.


   

    남편이 없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남편은 내게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 존재이다.  함께 있으면 왠지 귀찮고 거추장스러운데 그런 사람이 없으면 또 불안하고 찾게 된다. 내가 세례명으로 받은 사라라는 인물은 성경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내가 딱 그 짝이다. 좋아하던지, 싫어하던지(?)  하나만 하면 좋으련만 그게 또 그렇게 쉽게 안된다. 호불호가 분명한 걸 좋아하는 타입인데도 불구하고 남편에게만큼은 그렇게 안된다. 전쟁을 함께 겪은 전우라서 그런가?





  결혼을 하고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고 십 년을 살았다. 소위말하는 딩크족. 그렇게 살다 보니 뭔가를 하는 것도 남편과 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여행을 가도 쇼핑을 가도 남편과 가는 것이 가장 편했고, 어떤 사건이 생겨서 해결을 하더라도 스타일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손발 맞춰서 일을 처리하기가 가장 편한 상대가 되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일 년에 한두 번 싸울까 말까 할 만큼 잘 통했고 서로를 많이 사랑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앞서 쓴 여러 가지 일들로 사이가 꼬였다. 사이가 꼬이니 감정들도 꼬였다.



   예를 들자면 같이 있으면 아이처럼 밥을 달라고 하지도 않고 밥을 못 챙겨 먹는 것도 아닌데도(남편은 성인이다! 어른이다!)  꼭 밥을 해줘야 될 것 같아서 기어이 밥상을 차려주게 된다. 회사에서 많이 힘들었는지 아닌지 들어올 때마다 안색을 살피게 되고 많이 찌든(?) 날에는 어서 들어가서 쉬어라며 모든 집안일과 아이의 케어에서 해방시켜 준다.  꼭 엄마가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당연히 남편은 내가 아직까지도 너무 좋단다.  내가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놓인다고 내가 뭐든 다 해결해 줄 것 같단다. "내가 네 엄마니?"라고 얘기해도 웃기만 한다. 그래, 모든 것이 내 탓이지. 내가 너무 잘해준 탓이지라고 자책한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남편이 없어진다면? 남편 없이 나 혼자서 살게 된다면? 생활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혼자서 사는걸 너무너무 잘 살던 사람이었으니 지금에라도 혼자 산다면 나의 생활을 꽉꽉 채워가면서 잘 살 것 같은데, 마음까지 잘 지낼 것이라곤 장담을 못하겠다. 있는 정 없는 정 오만정 다 떨어져서 정말로 절실하게 남편이 미워서 떠나게 된다면 훨훨 나는 기분으로 살 것 같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전우애(?)가 너무나 깊어서 지금 없어지게 된다면 많이  보고 싶어 할 것 같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누군가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 걸까? 이게 사랑일까? 아이 낳기 전에는 십 년 차에도 사랑이라고 당차게 얘기하고 다녔지만 오히려 아이 낳고 나서 이게 사랑인지 잘 모르겠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극혐 하지만 진짜 가족이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겠다. 가족 간의 사랑을 하고 있는 건가?


   

 




   오늘도 전화 목록에서 가장 짧은 기록이지만 가장 횟수가 많은 기록도 남편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늘 뭘그렇게 묻는다. 뭘 먹었어? 어디야? 뭐하니? 아프진 않니? 글로 쓰고 보니 참 로맨틱 하다만 귀찮다. 정말 귀찮다. 필요한 용건만 전화하고 용건만 간단히 나는 나에게 이런 것들은 참 귀찮은데 이 귀찮은 것도 적응이 되었다. 십수년을 그렇게 살다보니 별게 다 적응이 된다.  그렇다고 대판 싸우고 하루이틀 이런 전화가 없는 날에는 또 허전함을 느낀다. 애꿏은 전화기만 쳐다보면서.


  이런게 사는건가 싶고, 이런게 남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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