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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Nov 13. 2015

로마 3

폼페이 에 관하여




 베수비오 화산이 정면으로 선명히 보이던 날
방문한 폼페이의 역사는 감히 상상 할 수 없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여행내내 긴 버스 이동중에,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멈출 즈음 도착한 유적지
비온뒤 맑은 하늘 덕분에 저 멀리 웅당한 베수비오 화산을 볼 수 있었고
젊고 열정 넘치는 성악가 김,,가이드의 현장에서의 멋진 솔로 음악을 들었던 10월 어느 날이었다
길어도 한 번 쯤은 읽어보아야 할 폼페이의 역사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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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소멸한 도시다. 선사시대의 용암이 흘러나온 자리에 건설되어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었다. 둘레가 3km인 방벽으로 면적이 약 63㏊인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도시로 들어오는 가장 높은 지점의 베수비오 문과 가장 낮은 지점의 스타비아 문 등 7개의 문이 발굴되었다.
종교·경제·시민생활의 중심이었던 포룸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원형투기장 및 체육훈련장 등도 발굴되었다. 아폴론 신전이나 원형투기장은 가장 오래된 건물들로 알려진다. 도시 전역에 다양한 형태의 욕장이 산재해 있다.
발굴자들은 고대생활의 모든 면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서민의 집들도 부유층의 집들만큼이나 귀중한 자료이다. 지붕·2층·발코니 등이 현재 복원되어 있다.




폼페이 시는 선사시대의 용암이 흘러나온 자리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불규칙한 형태를 이루었다.
발굴 결과는 남서부지역이 가장 오래되었음을 시사하지만 방벽이 확장된 단계나 누구에 의해 확장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둘레가 3km인 방벽은 면적이 약 63㏊인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이 방벽의 최종 경계선은 삼니움족이 폼페이를 장악한 뒤에 정해진 것이라고 추측되나 그리스 양식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도시로 들어오는 7개의 문이 발굴되었다. 남동-북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중심도로인 스타비아나 가도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베수비오 문(해발 44m)과 가장 낮은 지점에 있는 스타비아 문(해발 8m)을 잇고 있다.
스타비아 문을 통해 사르누스 강과 스타비아이와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이 중심도로에는 다른 2개의 간선도로인 아본단차 가도와 놀라 가도가 교차하고 있다. 공공건물들은 대부분 3개 지역으로 나누어져서 남서쪽의 거대한 평지에 있는 포룸(광장, 해발 34m), 남쪽 방벽 가장자리의 만이 내려다보이는 높이에 있는 삼각 포룸(해발 25m), 동쪽에 있는 원형투기장 및 체육훈련장 등으로 분류된다.
종교·경제·시민생활의 중심이었던 포룸은 2층의 열주가 있는 현관(포티코)에 의해 둘러싸인 커다란 4각형 지역이었다.
카피톨리누스 구릉의 3대 신인 주피터·주노·미네르바에게 봉헌된 신전이 북쪽에서 포룸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다. 동쪽에는 큰 식료품 시장인 마켈룸이 있었고, 남쪽에는 62년의 지진 후 세워졌던 라르 신(도시 수호신)의 작은 신전,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그리고 부유한 후원자인 유마키아가 세운 인상적인 모직물 제조공장이 있었다. 포룸의 남쪽 끝에 있는 카피톨리움 반대쪽에는 시 의회와 행정관청 관리들이 모여서 회의하던 장소가 있었다.
중심 방의 사면이 복도로 둘러싸인 거대한 바실리카는 이 도시에서 건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물이며, 바실리카 양식의 그리스도교 교회당의 기원과 발달을 연구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지붕이 있는 이 건물은 상품거래와 재판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서쪽으로는 폼페이의 수호신인 베누스 폼페이아나의 신전이 있다.
바실리카 옆에 있는 아폴론 신전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이곳의 하층토 발굴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삼각 포룸은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인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삼각 포룸 동쪽에 있는 극장·체육훈련장·소극장은 BC 3~1세기에 세워졌다. 제우스 메일리키오스 신전, 이시스 신전, 삼니움족의 옛 체육훈련장이 근처에 있다. 폼페이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원형투기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원형투기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로마 식민지가 폼페이에 건설된 후에 세워졌다.
서쪽에는 커다란 체육훈련장이 세워져서 삼니움족의 옛 체육훈련장 대신 사용되었다. 로마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스타비아 욕장, 포룸 욕장, 화산폭발 당시 공사가 진행중이었던 중앙욕장, 호화스런 개인 주택들의 욕장 등 도시 전역에 욕장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공공 건물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발굴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수백 채의 민간 주택들이 더 중요시되고 있다. 특히 이 민간 주택들이 독보적인 이유는 적어도 400년에 걸친 가정용 주택건축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이 오직 폼페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초기 주택들은 제1차 삼니움 점령기(BC 4~3세기)에 세워졌다.
특히 '외과의사의 집'은 이 기간 동안 세워진 초기 아트리움(중정) 주택의 예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가장 호화로운 주택들은 교역과 문화적 접촉의 증대로 세련된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었던 제2차 삼니움 점령기(BC 200~80)에 지어졌다. 구역의 한 가구 전부를 차지하는 파우노의 집에는 2개의 아트리움과 4개의 트리클리니아(식당), 그리고 열주로 둘러싸인 2개의 큰 안뜰이 있다.
이 집의 정면은 당시의 주요건축자재인 곱게 간 누케리아산 회색 석회화(石灰華)로 되어 있다. 벽은 폼페이 제1양식(구조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회반죽에 채색을 하여 대리석으로 겉치장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 집에서 발견된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자이크는 분실된 그리스의 그림을 본떠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많은 주택들은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으로 장식되었다. 높은 기둥으로 받친 으리으리한 아트리움이 있는 은혼식의 집도 이 시기에 지어졌으나 후일 개조되었다. 멋있는 연회장과 자녀들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엑세드라(벽감)는 BC 80~AD 14년에 유행했던 폼페이 제2양식(건축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장식되었다. 삼니움 시대 동안 많은 주택이 건설되었기 때문에 로마 시대에는 그렇게 많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이 시기에 지은 집들은 대체로 낮은 아트리움을 갖는 등 규모는 더 작았으나 장식은 보다 정교했다.
로마 제국시대에 지은 루크레티우스 프론토의 집은 자그마하지만 우아한 주택이다. 타블리눔(응접실)은 BC 15~AD 62년경에 흔하던 섬세한 폼페이 제3양식(장식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장식되어 있다. 베티 저택은 로마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상인 계층의 전형적인 주택으로 몇몇 방은 폼페이 제4양식(환상적 양식이라고도 함)으로 꾸며져 있다.
분수와 청동·대리석 조각들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 훌륭한 그림들, 우아한 가구가 있는 아트리움-열주식 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다.
도시 전역에는 수많은 작은 주택들도 있으며, 그가운데 많은 것이 상점이다. 발굴자들은 고대생활의 모든 면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서민의 집들도 부유층의 집들만큼이나 귀중한 자료이다. 지붕·2층·발코니 등이 현재 복원되어 있다.
(다음백과 인용)


그렇게 폼페이를  기차로 떠나던 기억 하나가 마음속 깊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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