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서
거제도에 결혼식이 있어 가덕대교를 건너. . .
해금강 유람선을 타려다 발걸음을 돌린 길이
하필이면. . .
천주교성례순지길 의 한 쪽
알고는 못갈 용감한 산행길이었다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지라 감히 산행은 꿈도 꾸지않던 반년이 지났고. . .
숨차게 오르내리던 길 뒤의 차가운 남해바닷속에 발을 담기고 브라보를 외친 나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다
가끔은 나이를 잊어버리는것도 ?
3시간 넘는 길을 돌며 잠시 나를 돌아본 시간인지도 (서이말등대ㅡ돌고래장대ㅡ공곶이ㅡ서이말등대)
. . . . . .
설명은 카톨릭쉼터를 참고한다
한번쯤 기억할만한. . .
[가톨릭 쉼터] 거제도 ‘섬&섬길’ 제13코스 ‘천주교 순례길’
하늘·바다 하나된 거제에서
신앙 선조를 만나… 묵상에 빠지다
거제 8경 공곶이 등 절경에 ‘감탄’
병인박해 피해 땅끝까지 도망온
윤사우의 움막 터 등 볼 수 있어
110년의 깊은 신앙 자취들 ‘감동’
발행일2015-02-01 [제2930호, 9면]
▲ 너른바위에서 바라본 내도와 외도.
예로부터 거제도는 동백과 유자, 탱자, 국화, 진달래 등 일년 내내 어디서나 꽃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진도, 추자도 등과 함께 귀양의 섬으로 불리웠는데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에 비교해 보았을 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었다. 한편 1980년대에는 대형 조선소들이 들어서면서 산업화의 선봉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거제시는 ‘섬&섬길’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 거제도의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자연과 문화를 접목한 둘레길 탐방 코스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산교구 복자 윤봉문 순교자 묘소(담당 허철수 신부)를 중심으로 한 ‘천주교 순례길’은 거제도 110년 신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우리를 깊은 감동과 묵상에로 초대한다.
▲ 거제도 110년 신앙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천주교 순례길’의 지도.
‘천주교 순례길’은 거제시 일운면 예구마을 선착장에서 시작해 거제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공곶이를 지나 와현봉수대, 서이말등대, 지세포성을 거쳐 거제조선해양문화관 앞까지 걷는 13.7㎞, 5시간 40분 코스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거리다.
장시간 걷기 힘든 이들은 차량 진입이 가능한 윤봉문 순교자 묘소와 서이말등대를 별도로 방문하고 예구마을에서 공곶이와 너른바위(돌고래 전망대)를 왕복해 걷는 4㎞ 2시간 20분 코스를 순례해도 된다.
해안 절경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순례길은 그리 높지 않은 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지루할 새를 주지 않는다. 부담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더 선명하게 들어오는 듯 하다.
■ 공곶이
첫 번째 쉬어가는 곳 ‘공곶이’는 예구마을 포구에서 산비탈을 따라 20여 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동백나무 터널로 이뤄진 333층 돌계단과 그 위로 흩뿌려진 붉은 꽃잎을 지르밟고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강명식(바오로·85)씨 부부가 평생을 피땀 흘려 일궈낸 자연경관지 공곶이 해안을 만날 수 있다. 동백나무·종려나무·수선화·조팝나무 등 나무와 꽃만 해도 50여 종. 4만 평이 넘는 농원 곳곳에 노부부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는, 공곶이는 생명의 숲 그 자체였다.
▲ 공곶이로 내려가는 길목은 333개 돌계단으로 돼 있고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봄철 동백꽃이 만개한 시기에는 붉은 꽃잎이 비단처럼 깔려 장관을 이룬다.
■ 가매너른바위
공곶이에서 해안길을 따라 40분 정도 걷다보면 초기 거제도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찾았던 장소인 ‘가매너른(가마넓은)바위’가 나온다. 바위 두 개가 있는데 아래는 가마처럼 생겨 가마(가매)바위, 위는 넓(너른)다고 넓은 바위라 불린다. 현재는 돌고래의 이동과 생태를 관측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4월 초부터 5월 중순까지는 이곳에서 멸치떼를 따라 이동하는 돌고래를 볼 수 있다.
가매너른바위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흰색의 ‘서이말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서이말등대는 20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비추는 유인 등대로, 서이말등대에 서면 저 멀리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망망대해가 두 눈을 가득 채운다.
특히 이곳은 거제도에 천주교 복음을 처음 가져온 윤사우와 그의 장남 경문(베드로)이 움막을 짓고 살던 외딴 곳이었다. 이들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가려고 이곳에 왔지만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세월이 지나 그들이 사용한 움막과 밭은 흔적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