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네다섯 살 즈음. 당진읍에 있는 나의 외갓집. 할아버지 할머니 댁의 안방엔 자개장이..
어쩌다 몰래 그 자개장 안을 살며시 들여다보던 기억 , 또 안방의 벽장 속의 온갖 사물 들을 들어가 만지작 거렸던 시간이 있었다.
자개장 안엔 언제나 털실로 뜨개질 한 옷가지들과 귀한 명주 천등이 가득했었고, 벽장 속엔 온갖 곡식들과 멀린 곶감과 건어물. 먹거리들이 가득했었던.. 할머니 몰래 곶감도 , 마른 음식들도 가끔 한 입씩 베어 물었던 희미한 시간이..
언제던가, 엄마의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 이야기해주시던 엄마의 국민학교 ( 당시엔 소학교였겠지.) 육 학년 시절 , 졸업식을 앞두고 , 엄마는 할머니 몰래 저 자개장 안에서 당시에 귀하던 거즈천을 꺼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줄 이별 선물로 손수건을 만드셨었다고.. 한 땀 한 땀 가장자리를 바느질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 모습과 그걸 발견하신 할머니의 어처구니없어하셨을 모습이( 그 귀한 천에 손을 댔으니 ) 이모의 방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자개장 앞에서 떠올랐다.
언제고 시간을 내어 지금은 너무나도 바뀌어버린 충청남도 당진읍을 가봐야겠다.
그 시절엔 할머니 댁 앞엔 누에 공장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나무 수레에 가득했었다. 하얀 실로 감긴 내겐 꼭 땅콩모양 같았던 누에고치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던 풍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