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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을 담다

가을의 기억을 소환한다

by emily

이 글을 어디에 써야나 한참을 머뭇거린다.

페이스북 계정의 내 글들은 존재하나 내가 그곳에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어서 ( 카카오 통합으로)..


거슬러 올라가 1991년 10월 31일부터 시작해 보련다.

그해 첫 임산부였던 내겐 큰 일들이 가득했었다.

큰 아이의 첫 태몽을 꾸어주셨던 건강하시던 나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그 해 6월( 난 5개월짜초짜임산부였던 시절이다) 돌아가셨고, 그다음 달인 7월엔 시조부의 상까지 치뤄내야헸었던..

첫아이라 작정하고 열심히 던 내 태교에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시조부상의 어찌할 수 없이 들어버렸던 곡소리 탓이었을까?

난 나름 나 자신이 무척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 생각했었건만,

첫아이의 출산 예정일이 열흘을 넘기고도 나올 기미가 없어 결국 유도분만을 하러 병원으로 들어가던 날이 1990년 10월 31일이었다.

씩씩하게 들어섰던 나는 임산부 대기실 침대에서 진통도 없는 채 저녁 여섯 시부터 금식이란 딱지가 터럭 붙어버렸다.

커튼 양 옆으론 조금씩 들려오는 임산부들의 아픈 신음소리들,, 난생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초짜 임산부.

그럴게 진통이 오던 내 옆의 임산부들은 하나둘씩 아기를 낳으러 옮겨지고, 또 다른 임산부들이 옆의 침대들로 들어오고... 나? 진통이 뭔지도 모른 채 늦가을의 밤은 길고 깊어지건만, 엄청난 식욕의 임산부에겐 그저 허기진 뱃속, 그리고 두려움 가득만 밀려드는데, 병동의 야간근무 간호사들은 일상인 탓에 라디오를 틀고, 야참을 먹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왔던 기억이다.

당시 유행이던 이용의 '잊힌 계절"이 들려오며 사과를 깎는 칼 소리, 사과껍질 소리, 그리고 아삭아삭 사과 씹는 소리 만이 적막 속에 울려 퍼졌다. 진통도 없는 예민한 내 귓가로 말이다.

어제의 내가 걷던 부석사 길에서 그 기억이 몽실 거리며 떠올랐었다.

2021년 10월 31일의 부석사엔 오늘부터 시작되는 With코로나 전의 영주의 사과, 가을이야기 축제로 엄청난 풍경객들로 ( 잠시 깜짝 놀라 마스크를 부여잡고 긴장했던 나. 사람이 가득한 오후에 잠시 들린 탓에 구도 맞추어 풍경을 잡을 공간도 없었다. 실인즉)

부석사의 가을을 처음 본 날은 아마도 2006년 즈음이었지 싶다.

남편의 중학동창들의 여행길에 내가 동행하게 됐던 까닭은 , 이혼한 친구의 딸내미가 소녀였다. 그 소녀를 동반한 아빠들의 여행에 소녀를 돌볼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었던 탓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단양팔경을 지나( 마침 건축설계사였던 동창이 가보자고 권유했던 기억) 가을의 부석사를 처음 마주했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매달린 풍경이 얼마나 멋지던지...

그리고 소녀와 나는 사과를 하나씩 베어 물며 그 정겨운 길을 걸었었다.


내 40대에서 얼마나 멋진 추억인지 모른다. 지금도 말이다.

부석사 옆 사과 밭의그당시 사진은 내 눈 속에 담았던 흐릿한기억에

어제 서둘러 지나던 부석사 오르던 길 옆의 사과밭을 살짝 훔쳐왔다.

사과 이야길 하다 문득 생각난 사과 풍경이 또 있다.

2010년 먼저 미국 이사를 했던 나와 옆지기 그리고, 막내의 보금자리 미시간의 Novi 집으로 한국에서 혼자 살며 대학을 다니던 큰 아이기 합류한 것이 2011년 일 학기를 마친뒤였으니, 2011년 가을의 풍경이다.

처음으로 우리 모자는 사과농장을 방문했었다.

재택근무와 출장이 가득했던 옆지기, 어쩌다 이삿짐에 실려 온 고등학생이던 막내는 각자의 시간이 바빴고, 커뮤니티 칼리지 수속을 하며 남은 시간에 장남과 가을을 즐겼던 그곳의 사과 풍경 역시 내겐 각인된 추억이다.

큰 아이가 찍어주었던 나의 최애의 사진 중 하나

당시 마르고 왜소했던 장남.( 아 참 10월 31일 사과 먹는 소리로 밤을 새운 내게 11월 1일 오전 9시를 좀 넘고 태어나 주었던 그 아이랍니다 )

내친김에 당시 우리가 살던 노바이 아일랜드 레이크의 호수 모습 ( 나의 산책 지였던 , 지금은 먼저 간 노견과 의 추억이 가득하다. 페이스북 계정에 매거진에 올렸던 사진이기도 하다. 시간이 될 때 다시 그 계정의 ' 디트로이트에서 아홉 번째 정류장 노바이'의 글을 가져와봐야겠다)

2021년 가을의 어제 10월의 마지막 날을 담기엔 떠오른 추억이 많아서 소환해버렸습니다.

어제 더 정확히는 영주의 둘레길을 계획했던 우리에게 , 영주의 멋진 제 친구 부부의 새로 지은 철학이 담긴 공간의 음악실에서 우리가 목말랐던 음악에 그만 빠져 버려서 몇 시간을 음악에 취해있다가 그래도 가을의 풍경이 그리워 달려갔던 오후 3;40경의 부석사 입구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었답니다. 귀경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여유롭지도, 혼잡해서 정신도 없었지만 보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풍경과 시간이었지요

영주에 벗이 거주하는 덕에 코로나가 터지기 전 2019년 4월에 방문했던 부석사의 같은 장소들을 차분히 담고 싶었으나 이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 모두가 놓치기 싫었던 탓이겠지요 싶어서 초상권 침해가 안될 범위 내에서 빠른 순간에 한 바퀴를 돌아버렸네요


그 해 봄엔 자목련이 가득했던 돌담 아래 돌담 틈에 소국이 자리 잡고 자태를 뽐내더라고요

저 담벼락에 붙어서 찍던 포즈도 그립던

이 나무 아래에서 정겹게 단체사진도 ( 벗들의 초상권 침해는 안 되는 걸로!)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내려오던 아쉬운 발걸음들에...

부석사의 가을은 40대의 내겐 사과나무의 열매로 강렬하게 다가섰던 , 무량수전 건축물 양식으로 문화적, 역사적 기록이기도, 또한 기억 속 그 자리 자리마다 서 계시던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어머님들의 모습까지 또렷이 각인돼 버렸답니다.

2019.4월의 나

당시 유독 내 눈에 담겨버린 두 분 ( 아마도 그 전 해 엄마를 보내드린 까닭도 첨부되었었지...)이 서 계시던 그 자리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었다.

또 언제고 그 자리에 서서 어제를, 몇 해 전을 , 나의 40,50대를 추억할 시간들이 펼쳐지리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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