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증조모님(1)
어제 내내 뇌리를 스치시던 분이 계셨다
95년이던가
알차게 살아냈던 내신혼의 보금 자리를 떠나오던 날이 하필 귀빠진 날
서울로 올라오던 길은 실인즉 착찹했다.
돌지난 막내. 4살짜리 큰 아이.
홀연 다 접구 유학을 가는 옆지기
나?
어느 새 우물 안 속에서 우물 입구를 통해 하늘을 쳐다보는 개구리 같던 느낌 하나. . .
아무튼 그렇게 짐은 시댁 2층의 방하나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때늦은시집살이를
유학떠나는 옆지기에겐 3년 군대 간 셈 치고 살고 오라고 큰 소리는 쳐 놓고;;;
복병은 많았다
오래되신 가정부 아주머니. 시할머니. 주말이면 아파트에서 가정주택이 그리운시누네 두 집 . 결혼 전 인 무뚝뚝한 시동생 . . .
시조모님의 가끔 부리시는히스테리랄까? 살아오시며 쌓인 분노의 폭발일까?
오랜 가정부 아주머니의 보이지 않는 시샘?
이런 또 글이 옆으로
어제 바닷가에서 혼자의 시간 내내
실은 시조모님의 그 날 끓여주셨던 미역국이 떠올랐었다는 이야기다
지난 가을에 깍두기를 담굴때도 할머니가 떠올랐고, 어제도 떠오르셨다
미국서 돌아와 내가 뵈었던 할머님의모습은 ,
그 시절 그렇게 당당하게 호통치시던 분도, 부엌에서 깍두기를 담그시던 분도 아니신
다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 같았던 기억에 눈물짓던 두 해 전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미운정 .고운정 탓일까?
한 참을 무릎까지 꿇었던 기억하고 싶지않은 시간들도,
욕지거리 가득 망연자실 했던 시간도 있었건만
아주 가끔 말이다
그 분이
은미야가 아닌 을미야
하시던 음성이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