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첫여름 휴가지로 정했던 곳은 보성의 녹차밭을 여유롭게 거닐고 해남의 녹우당을 다시 골목골목, 뒷 숲까지 살피고 해남읍 시장의 국화빵도 사 먹으며 지난봄에 갔던 완도의 반대편 해변 어디쯤서 하와이 원피스와 모자로 봄뽐 하며 사진을 찍고 바다로 몇 년 만에 몸을 맡기려던 구체적인 계획 설정이었었다.
아뿔싸!
태풍이었다. 마침 남도 쪽 옆을 지나는 걸로 예상되니 태풍 반경으로 일부러 들어가는 섣부른 짓은 말아야지....
한 편의 생각엔 , 늦가을 차남의 혼인예배도 남아있어서 굳이 멀리 가지 말고 집 근처에서 방황? 아닌 방황도 어떠랴 싶었었다.
요즘은 옆지기가 더 못 견뎌하는 듯도 하다. 만 팔 년이 넘어가는 사택과 남녘의 생활의 단조로움을.. ( 모 나야 오가던 기간이 칠 년, 이사온지 만 육 개월 차이니 )
날이 개이면 움직여보자는 나의 만류 아침을 먹고 난 옆지기는' 어라 날이 개이잖아 , 가방 싸라. 나가자!'를 외쳤고, 난 허겁지겁 설거지와 뒷 마무릴 끝내고 원래 세워 둔 계획에 따라 미리 챙겨두었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그렇게 출발해 향한 곳은 의성이었다.
출발을 하고 나니 비가 간간이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모 어쩌랴 떠나버린 길을..
옆지기가 목적지를 알려준다
조문국 유적지 란다
어? 조문국???
난생처음 듣는 듯한 장소의 이름의 생경함에 검색을 해보고( 참고 자료는 구글 검색을 통해 아래에 올려놓는다 ),
아주 조금씩 빗방울도 동반한 흐린 날씨였지만 한 바퀴 걷고 나니 오히려 폭염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그곳을 올려본다.
참고 자료는 사진 아래로 읽어보시길 ,
조금 길다 느끼실지도...
출발하다 보니 점심을 지나서 휴게소의 옛날 핫도그로!( 물론 이제 내 나이는 밀가루도 반만이라 반은 다 띄어내고 ~^^)
월요일이라 휴관이던 박물관
비가 내렸다. 문닫힌 박물관 주변을 잠시 거닐다가 이 길 이참 마음에 들었다.
옆지기께 부탁했건만 , 정면에서길과가로수가보이게 찍어달라고 ㅠㅠ
조문국 유적지와 왕릉이 같이 자리 잡고 있던 곳
5월 엔작 약 꽃밭 이유 명하다고
고분의 규모도 상당했다.
인스타용 의자의 위치가 내가 탐색할 때와 다른 장소더라는
옆지기 한컷
저 아래 회색 건물이 고분 전시장이었지만 월요일이라 굳게 닫혀 있었다
한 바퀴 돌고 나오려니 그제야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주차장에 음료 트럭이, 시원한 진한 대추차를 한잔 !
조문국은 거슬러 거슬러 삼한시대로 추정한다.
참고자료도 읽어보시길 권하며...
의성은 지리적으로 경주에서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중요 교통로에 위치하여, 당시 신라에서는 이곳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였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은 의성에서 현존하는 대규모의 고총에서도 확인된다. 금성산 고분군은 현재 행정 구역상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로 구분되지만, 하나의 능선에 지속적으로 조성된 대규모 고분군이다. 이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발굴 전문기관에 의해 총 7회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일대에는 조문국 경덕왕이라 전해지는 고분을 포함해 약 374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유물의 다수는 의성 양식 토기이지만 금동관, 금동장식, 은제관식 등이 출토되었다. 의성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였으며 이를 증명하는 대규모 고분의 축조, 수준 높은 위세품 등에서 확인되며 의성 조문국박물관에서 전시 보관 중이다. 또한 대리리 2호분 내부 모습을 재현한 고분전시관에는 출토유물, 순장문화를 통해 당시 매장 풍습을 엿볼 수 있다. 대리리 고분군 내 의성작약단지(4800㎡)를 조성해 5월 중순부터 많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계절별 꽃단지를 조성하여 연중 내내 지역문화유산 관람과 함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금성면 일대에는 수정사와 금성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