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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Aug 05. 2022

여름의 남녘

청송에서 뜻밖의 장소를 거닐다


계획과 달리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 옆지기의 휴가

그 두 번째 장소는 의성을 거쳐 청송이었다.

갑작스레 떠난 오후였기에 의성에서 청송으로 숙소를 찾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 앞에 찰 주차하고 보니 왠 멋들어진 기와 건축물이 내 눈길을 사로잡아버렸다.

이름하여 "소헌공원 "

오후의 흐린 햇살 아래의 건축물들에 잠시 몸과 마음을 가득 맡겨버렸었다.

맘 같아서는 해 진 밤으로 다시 보고 싶었으나 장거리 운전과 숙소가 좀 떨어진 곳이라.. 언제고 다시 와봐야지 하며 발길을 돌렸다.


소헌 황후와 역사적 건물에 대해서는 사진 아래로 구굴 검색을 통해 남겨본다

참고하시길..

 우리네 건축물에 관해서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바리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조화의 미에 그냥 푹 젖어보시길 바라본다.


잠시 눈을 감고 그시절의 인물로 상상의나래를 펼쳐보던...

간간이 비가 내리기도 했던 흐린 날씨였지만

소헌 황후 공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장관이었다.

오랜 고 모과 세계 유네스코에 지질공원으로 올려져 있는 슬로시티 청송을 한 번 방문해 보시길...


참고자료

소헌왕후 심 씨는 조선 세종의 왕비이다. 본관은 청송이며, 별칭은 공비, 경빈, 시호는 선인 제성 소헌 왕후이다. 위키백과


경북 청송군 '소헌(昭憲) 공원'이 청송 군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소헌공원은 청송군 청송읍 소재지 중심에 위치한 곳으로 '찬경루(讚慶樓)'와 '운봉관(雲鳳館)'이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청송군이 복원 정비사업을 완공하고 주민 휴식 장소로 상시 개방하고, 각종 문화행사도 기획하는 등 청송의 문화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찬경루는 청송 심 씨 시조 문 림랑 위위 시승 청기군 심 흥부의 제각으로, 세종대왕의 정비인 소헌왕후와 관련된 문화유산이다. 운봉관 또한 조선시대 청송 도호부의 객사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찬경루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83호


찬경루는 옛 청송 도호부 객사인 운봉관 앞 용전천 강가에 자연으로 생긴 취석 암반 위에 세워진 16칸 2층 누각이다. 1428년(세종 10) 군수 하담이 조정의 명에 의해 창건했으며, 소헌왕후 심 씨가 낳은 여덟 대군이 각각 2칸씩 담당해 모두 16칸으로 돼 있다.


건물의 얼굴에 해당하는 편액 찬경루의 의미는 '이 누대에 올라 보광산에 있는 소헌왕후의 시조 묘를 바라보니 우러러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찬경루에는 누대의 역사를 기록한 찬경루 약사를 비롯해 서거정·김종직·홍성민 등 조선시대 이름 높은 선비와 학자들의 편액과 시판·기문·상량문 등이 있다.


누상에 오르면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직접 쓴 '송백 강릉(松柏岡陵)'이란 현판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청송 부사를 지낸 한광근의 아들 한철 유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운봉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운봉관은 조선시대 청송 도호부의 객사 건물이다. 세종 10년(1428) 당시 군수 하담이 찬경루와 함께 건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송은 소헌왕후 심 씨의 고향이라 하여 군에서 도호부로 승격됐으나 갑오개혁 때 다시 군으로 환원됐다. 청송 도호부에는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접대와 숙소로 이용되던 객사를 비롯해 부사의 집무실인 동헌(東軒) 외에 관아 부속 건물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 이 객사가 운봉관이며 1600년부터 1871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중건했다.


운봉관은 원래 정청(政廳)을 중심으로 좌우에 양 익사(兩翼舍)가 배치된 건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8년경 정청과 서 익사가 훼손돼 동익 사만 남아 보존돼 왔다. 청송군이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고, 남아 있던 동익 사를 보수해 군민에게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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