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영화보다 더 무거운 현실

2018 브런치 무비패스 #3

by Emily Chae
영화 <디트로이트> 스틸 이미지, 네이버 영화

“대체 여기가 미국이야, 베트남이야?”

1967년, 폭동으로 긴장감이 흐르는 도시 디트로이트. 어느 날 밤, 알제 모텔에서 의문의 총성이 들리고, 무장 경찰들이 모텔에 들이닥쳐 용의자를 수색하는데…


50년 전 미국 디트로이트는 도시 빈곤과 차별 문제로 분노한 흑인들이 가게에 불을 지르거나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폭동,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들의 과도한 폭력이 더해져 그야말로 증오와 적대감이 팽배한 도시였다. 영화 <디트로이트>는 당시 상황을 가감없이 그려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한 억지 설정이나 드라마틱한 효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화 중간 중간 삽입되는 당시의 실제 현장 사진을 보면, 그때의 디트로이트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충격과 혼돈의 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알제 모텔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다룬 <디트로이트>는, <제로 다크 서티>, <허트 로커>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내러티브에 생생하게 빠져들게 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대단했다. 존 보예가, 안소니 마키, 윌 폴터 등 배우들의 열연도 영화의 흡입력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연출과 연기를 통해 알제 모텔 사건과 관련한 주요 인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입체감 있게 보여준 것이 좋았다.


이 영화는 인권의식이 결여된 경찰·사법권 등 국가 권력의 행사가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알제 모텔 쪽에서 총성이 들렸다는 사실만으로, 백인 경찰들은 모텔에 있던 흑인들을 반인륜적인 방식으로 취조하고 수색한다.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증거가 나오지 않자,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찰들은 더욱 가혹하게 무고한 흑인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물론 1950년대의 미국 백인 경찰들은 ‘모든 인간은 인종에 상관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영화에서도 이러한 가혹 수사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흑인을 도와준 백인 경찰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식과 감정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알제 모텔에 들이닥쳐 수색하던 경찰들이 한 방 안에 백인 여자 두 명과 흑인 남자 한 명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묘하게 표정이 일그러지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백인 여성이 백인 대신 흑인 남성에게도 이성적인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백인 남성에게 굉장한 열등감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는 백인 남성들이 자신과 흑인 남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시내 클럽에는 백인 경찰들이 와요”


우연히 알제 모텔에 묵게 되었다가 친구를 잃고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었던 가수 활동도 그만 두게 된 래리 리드(알지 스미스)의 갈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재즈, 힙합, R&B 등 흑인 음악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흑인 엔터테이너, 흑인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약자’인 흑인들이 백인 소비자의 돈을 받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쇼를 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자본주의가 혼합되어 나타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한때 누구보다도 스타가 되어 마음껏 무대를 누비고 싶었던 래리는 알제 모텔 사건 이후 백인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백인들의 음반 회사를 배불려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된다.

또 백인 경찰에게 협조하며 디트로이트에서 경비로 일하는 멜빈 디스뮤크스(존 보예가)는 어떠한가.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백인 경찰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면서 한편으로는 흑인 시민들을 보호하려 애쓰는 그는 같은 흑인에게는 ‘엉클 톰(Uncle Tom, 백인의 비위를 맞추거나 시중을 드는 흑인을 비꼬는 말)’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물론, 알제 모텔 사건 재판 과정에서 단지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백인 경찰들보다도 더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처럼 <디트로이트>는 흑인 차별에 대한 극단적인 반발과 여전히 백인 중심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순응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다양한 인물의 갈등을 통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제작진은 “이 영화는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얼마나 바뀌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질 기회였다”고 말한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디트로이트 사건은 역사에서 이례적인 순간이 아니었다”고도 강조한다.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영화 속 증오와 갈등은 현실에서 얼마나 반복되고 있는가?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디트로이트>는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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