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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Chae Feb 15. 2020

시대의 틈을 보는 관찰자

Danh Vō (얀 보)

Danh Vō는 월남전의 여파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던 1975년의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그가 네 살이 되던 해에 그와 가족들은 짐을 꾸려 직접 만든 보트를 타고 전쟁으로 파괴된 베트남을 탈출했다. 그러던 중 가족은 한 덴마크 선원에게 구조되었고, 난민으로 인정받아 덴마크 시민이 되었다. 그때부터 Danh Vō는 코펜하겐에서 자라며 예술 교육을 받았고 현재는 독일과 멕시코를 오가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드라마틱한 개인사와 그로 인한 유동적인 정체성은 당연하게도 Danh Vō의 작업 세계에 밀접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개인적 경험과 관련 있는 오브제를 선택하여 작업으로 제시한다. 겉보기에 아무런 의미나 연관도 없어 보이는 물건들로 관객을 당황케 하는데, 이를테면 냉장고와 TV, 그리고 그 위에 달린 십자가 같은 것들이다.


Oma Totem, 2009.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Danh Vo: Take My Breath away≫ (2018) 전시전경


 <Oma Totem>(2009)은 그의 할머니가 1980년대에 베트남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을 때 독일 정부로부터 받은 일종의 ‘환영 선물’을 전시장에 가져온 것이다. 평범한 가전기기로 보이는 이 물건들에 개인의 역사가 부여될 때 이는 이민과 정착이라는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을 내포한 오브제가 된다.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작업은 2009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2.2.1861>이다. 베트남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다 처형 당하게 된 프랑스 선교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처형 직전 보낸 편지를 필사하는 작업이다. 오픈 에디션으로 제작되는 이 필사본은 Danh Vō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써내려 간 노동의 결과물이다. 불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이민자 출신 아버지의 손에서 재탄생한 200년 전의 편지는 그 오랜 시간 맥락을 이어온 이방인과 배척, 신앙과 사랑의 문제를 현대의 관람객과 컬렉터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전달한다.


2.2.1861, 2009-, Ink on paper.


Danh Vō는 스스로를 ‘관찰자(an observer)’라 말한다. 그가 관찰하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의 굴곡에서 발견한 ‘틈(gap)’이다. 20세기 말의 주요한 전쟁으로 인한 난민이자, 이민자이자, 동성애자로서 서구∙기독교 사회에서 살아온 그는 평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항하는 모순과 차이를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티스트로서 그러한 지점을 예민하고 영리하게 포착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의 태도보다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포용하는 쪽에 가까이 위치한다.


We the People, 2010-14. Kunsthalle Fridericianum, ≪July IV, MDCCLXXVI≫ (2011) 전시전경


 그에게 2012년 휴고 보스 상(Hugo Boss Prize)을 안겨준 <We the People>(2010-14)은 자유의 여신상을 원본과 동일한 사이즈로 복제하고 이를 조각 내어 분산시킨 작업으로, 역시 Danh Vō의 관찰자적 면모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조각된 상태에선 육중한 추상 조각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전시실에 덩그러니 놓여 어떤 배경도 쉽게 연상시키지 않지만, 그것이 자유의 여신상의 일부라는 사실은 이 작품에 공동체와 국가의 분리와 집합이라는 개념을 덧씌운다. 이처럼 다각도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대상을 골라 적절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한 발 물러서 그것이 관객에게 어떻게 흡수되는지 지켜보는 것은 그가 지금껏 능숙하게 해온 방식이다.


White Cube Hong Kong 개인전 전경 (2016)


그는 자신의 작업이 개인사적 측면에서만 읽히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는 힘 있는 이들이 내린 정치적 결정의 결과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는 그 자신이 삶과 예술을 대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는 늘 자신의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그의 능수능란한 감각과 위트로 사실은 그것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I never thought that it was personal. I thought that was like anything else. It was a political decision of very powerful people. I think we are all just consequences of these decisions.” 


글/ Emily Chae


자비에 후프켄스(Xavier Hufkens) 갤러리, 화이트큐브(White Cube) 갤러리, 쿠리마수토(kurimazutto) 갤러리, 그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개된 그의 자료와 CV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특히 블룸버그(Bloomberg)에서 제작한 ‘Brilliant Ideas – episode 66’ Danh Vō의 인터뷰 영상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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