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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Chae Mar 23. 2022

미술과 사람이 가진 힘

2022년 3월 셋째주

화랑미술제 준비를 핑계로 슬쩍 한 주 거른 Weekly Art Emily

만들어내는 컨텐츠와 글에 대한 생각도 부쩍 많아지는 요즘이네요.

3월 셋째주 소식 시작합니다.




서방 미술계에서 퇴출되는 러시아 부호들


지난 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달이 흘렀습니다.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다치고, 도시가 파괴되고 산업이 무너져도 시간은 꿋꿋이 흘러갑니다. 연일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의 팽팽한 긴장과 제재,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미술계도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 등 주요 경매사들은 런던에서 예정되었던 러시아 미술 경매를 취소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술 시장에 꾸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러시아 부호들도 은행 거래 제재로 미술품 거래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영국의 로열 아카데미, 테이트 미술관 이사직에서 러시아인들이 줄줄이 사임하거나 퇴출되기도 했습니다.


아트넷뉴스의 심층 기사에 따르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로 이미 러시아 컬렉터들의 힘은 약해져왔다고 하는데, 그들이 인상주의 등 근대 화가, 혹은 루치안 프로이드와 프란시스 베이컨 등 현대 화가들의 경매가 기록 갱신에 공을 세운 것과는 별개로 컬렉션의 질이 좋은 영향력 있는 러시아 컬렉터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나의 예로 들었습니다.


20세기 초반 모던 아트의 선구자 역할을 한 전설적인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과 이반 모로조프를 낳은 국가이지만, 현재로서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에 견줄 만한 컬렉션을 가진 러시아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표현하네요.


이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지만, 서구 미술계에 상당한 지각 변동이 이미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우크라이나를 위해 전설적 퍼포먼스 재연


한편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1946-)가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기금 마련을 위해 "The Artist Is Present" 퍼포먼스를 재연한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된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는 두 개의 의자에 작가와 관객이 마주 앉아 가만히 서로의 눈을 바라본 것으로, 3개월간 매일 7시간씩 무려 750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두고두고 회자되며 아브라모비치의 대표작 중 하나로 남았는데요, 특히 그의 옛 연인이자 오랜 예술적 동반자였던 울라이(Ulay)가 관객으로 참여해 수십 년만에 두 사람이 재회한 장면은 수많은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울라이를 비롯해 작가와 눈을 맞추며 위로 받은 1,500명의 모든 관람객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https://youtu.be/OS0Tg0IjCp4



이번 달 이 퍼포먼스가 뉴욕의 션 켈리 갤러리(Sean Kelly gallery)에서 12년 만에 재연됩니다.


아트시(Artsy) 플랫폼에서 이 퍼포먼스에 참여할 기회를 두고 경매가 열리는데, 이 기회를 얻은 사람은 이달 말 아브라모비치와 나란히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되며, 이 장면은 12년 전 퍼포먼스를 기록했던 사진가 마르코 아넬리(Marco Anelli)가 촬영하고 책으로 기록됩니다. 경매를 통한 수익금은 구호 단체 다이렉트 릴리프(Direct Relief)에 기부되어 우크라이나 피해 구제 활동에 사용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아브라모비치의 개인전이 진행 중인 션 켈리 갤러리의 두 직원 로버트 스프링(Robert Spring)과 테릴 워렌버그(Terrill Warrenberg)가 냈다고 하는데요, 러시아 침공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브라모비치도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구호 문제가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하루라도 빨리 퍼포먼스를 진행하게 되었다고도 하네요.


경매 입찰 기간은 3월 25일(한국시간 3월 26일 새벽 1시)까지이며, 22일 현재 입찰가는 1인권, 2인권 각각 15,000 달러, 16,000 달러입니다. (온라인 경매 링크)



한편, 션 켈리 갤러리의 전시 <Performative>는 아브라모비치의 지난 50년 간의 행위 예술 작업 중 네 가지 키워드에 집중하는 전시이며, 4월 16일까지 진행됩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The Artist is Present" 퍼포먼스 장면, 2010년. 사진 션 켈리 갤러리 제공. artnet news.



아시아의 슈퍼 컬렉터, 부디 텍 투병 끝에 별이 되다


지난 18일, 컬렉터 부디 텍(Budi Tek, 1957-2022)의 부고가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인 부디 텍은 중국 및 아시아의 현대 미술을 세계 무대로 올려 놓는 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컬렉터로서, 2011년 '세계 10대 컬렉터', 2012년 '파워 예술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중국 상하이에 두 개의 미술관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시아의 현대 미술 작품을 수천 점 수집한 슈퍼 컬렉터입니다.


부디 텍은 자카르타의 양계 회사 시에라드 프로듀스(Sierad Produce)를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축산업 및 양계업의 거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가 컬렉팅을 시작한 것은 2004년인데, 중국의 현대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거대한 스케일의 주요작들을 거침없이 거액에 사들이며 불과 10년 만에 양적, 질적으로 대단한 컬렉션을 일구어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2006년에 자카르타에 유즈 미술관을, 2007년에는 유즈 재단(Yuz Foundation)을 설립하고 2014년에는 상하이에 유즈 미술관을 설립했습니다. 특히 상하이 유즈 미술관은 중국의 주요 현대미술가들의 마스터피스가 집약되어 있으며, 중국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서구권의 파워풀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유즈미술관 개관전 <Myth/History> 출품작 이미지. 아델 압데세메드, 마우리치오 카텔란, 쩡판쯔, 최우람, 쉬빙, 장 샤오강. 사진: Yuz Museum Shanghai 웹사이트.



한편, 그는 2015년부터 췌장암을 앓으며 투병 중인 사실을 공공연히 알려왔습니다. 암은 텍이 자신의 사립 미술관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그는 지난 201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과 파트너십을 맺어 자신의 사설 재단 컬렉션을 공공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혀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후에 카타르 미술관과도 파트너십을 맺었고, 결국 이 세 미술관이 함께 만든 공공 재단에 부디 텍의 컬렉션이 기부되었습니다.



뉴욕에 가면 프릭 컬렉션, 휘트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때 사설 컬렉션이었다. 나도 유즈미술관이 언젠가는 공공 기관이 되기를 바라왔다.


공공 기부를 통해 '자신을 넘어서는' 컬렉션을 만든 것에 대해 부디 텍은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불꽃처럼 살아낸 그는 향년 65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고 기사들:


https://news.artnet.com/art-world/russian-oligarch-vladimir-potanin-resigns-guggenheim-2080333

https://news.artnet.com/art-world/tate-cut-ties-russian-billionaires-ukraine-2084636https://news.artnet.com/news-pro/art-detective-column-russia-2087099

https://news.artnet.com/art-world/marina-abramovic-benefit-ukraine-2087302

https://www.artnews.com/art-news/news/budi-tek-collector-dead-1234622352/

http://www.daljin.com/column/15765



뉴스 번역 및 컨텐츠 작성/ Emily 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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