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어렵나요(1) : 기 드 모파상 『비곗덩어리』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특별한 행위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 중에서 그 사람이 이제 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의미이며, 내가 다른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람을 구분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 마디로 보통 명사였던 누군가가 내게 고유 명사가 되는 기적이 바로 누군가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 주는 순간에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 시종일관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으로만 불리는 사람이 있다. 모파상의 소설 『비곗덩어리』에 나오는 여자다. 그녀가 이런 별명을 갖게 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듯이 살이 오른 몸매 때문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이름은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소설 안에서 단 한 차례 스쳐 지나가듯 언급될 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살집 많음’이라는 정체성 안으로 매몰되어 버린 여자다.
모파상은 이름 없는 그녀, ‘비곗덩어리’를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의 한 마차 안에 태우고 있다. 아홉 명의 승객과 동행하게 된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설은 프랑스 루앙에서 출발하는 승합마차 한 대와 함께 시작한다. 프로이센군에 점령당한 루앙을 탈출해서 르아브르로 가려는 피난민들이 육로 이동 수단으로 빌린 마차에는 모두 열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포도주 상점 점원 출신으로 포도주 도매업계의 거상이 된 루아조는 질 나쁜 포도주를 팔아넘기는 교활한 장사치이고, 방적 공장 세 개를 운영하는 카레라마동은 도의회 의원도 겸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또 다른 승객인 드 브레빌 백작 부부는 유서 깊고 고귀한 가문 출신으로 교양있는 신사 계층을 대표한다. 이 부부의 부동산 수입은 연간 50만 리브르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다. 사회 권력층으로 새롭게 부상한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이들 세 쌍의 부부는 마차의 안쪽 자리에 남녀로 나뉘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여자들 옆에는 수녀 두 명이 묵주를 한 알 한 알 넘기며 앉아 있다.
남자들이 앉은 열의 끝자리, 즉 두 수녀의 맞은편에는 다른 승객들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승객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민주투사라는 코르뉘데와, 살집 많은 몸매 때문에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여자다.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남자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비곗덩어리’는 앉은 자리가 상징하는 것처럼 남자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화류계 여자다. 모라토리엄 수준의 경제 상황 속에서 나락까지 떨어진 삶을 어떻게든 지탱해보고자 몸이라도 팔아야 했던 『레미제라블』의 ‘판틴’이 바로 이 소설의 ‘비곗덩어리’다.
예상하지 못한 승객, ‘몸 파는 여자’와 동승했다는 수치심은 서로 낯설어하던 다른 여자들을 갑자기 ‘친구로, 심지어 속내를 주고받는 사이’로 만든다. 하지만 비곗덩어리를 괄호 밖으로 내몬 이들의 결속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배고픔이 곧 그들을 덮쳤고, ‘공공의 수치’라고 모두가 멸시하던 비곗덩어리만 음식을 준비해 온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육즙이 흘러내리는 닭고기와 빵, 포도주를 본 마차 안 승객들은 비곗덩어리에게 ‘부인’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이제 비곗덩어리는 나폴레옹을 지지한다는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지위가 격상된다. 모두 그녀가 준비해 온 음식들 때문이었다.
이 여자에게 말을 걸지 않고서 그녀의 음식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p. 29)
멸시하던 창녀의 호의에 기대어 겨우 허기를 면한 부르주아 승객들. 열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중간 기착지 토트의 여인숙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풍족한 식사를 하고 잠도 잘 자고 일어나보니 마부와 말이 사라져 버렸다. 피난 여행길의 동력을 빼앗은 사람은 프로이센 장교였다. 여행을 계속하려면 출발지의 여행 허가증 외에도 기착지 장교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마부와 말을 빼앗은 것은 여행 불허를 의미했다.
당황한 승객들 앞에 적군 장교의 협상 내용이 전해졌다. 마차를 출발시키려면 비곗덩어리를 잠자리 상대로 내어놓으라는 요구였다. 비곗덩어리는 당혹감과 수치심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승객들은 적군에 대한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한다. 하지만 여인숙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할 상황이 되자 그들의 태도에는 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장교의 제안을 꾸준히 거절하는 비곗덩어리를 냉담하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비곗덩어리는 ‘부인’에서 다시 ‘매춘부 계집애’로 끌어내려진다.
다음 날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비곗덩어리의 태도에 승객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침묵하던 수녀들이 마침내 궤변의 설득을 시작한다. 이웃의 행복을 위한 행동이면 교회에서도 나쁜 죄를 사하여 준다는 수녀들의 말에 비곗덩어리의 마음은 움직이고, 그녀는 결국 희생제물이 되기로 결심한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말을 맨 마차와 마부의 모습이 보이고 모두 마차에서 비곗덩어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전날 밤과 많이 달라졌다.
용기를 그러모아서 공장주의 부인을 향해 겸손하게 아침 인사를 중얼거렸다. 상대방은 무례하게 그저 고개를 까닥해 보이면서 자신의 부덕이 능욕당했다는 듯한 눈길을 던졌다. 모두가 바쁜 듯했고 마치 그녀가 치맛자락에 전염병이라도 묻혀왔다는 듯 그녀와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했다. (p. 68)
제러미 밴담의 공리주의가 간과한 것은 소수 희생자의 불행이다. 비곗덩어리의 희생을 두고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으니 그걸로 되었어요’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비곗덩어리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굶주림에 허덕였을 그들이, 미처 먹을 것을 챙겨 나오지 못한 그녀에게 빵 조각 하나 건네지 않는다. 연민도 동정심도 없다. 행여 수치심과 굴욕감이 그들에게 옮을까 봐 누구 하나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분노로 어찌할 바 모르는 비곗덩어리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지만 ‘창피해서 우는 거예요’라고 속살대는 말만 들려올 뿐이다. 다시 덜컹거리며 가는 승합마차 안에서 민주투사 코르뉘데가 나지막하게 노래하는 ‘라 마르세예즈’가 들려오고, 노래의 중간중간 비곗덩어리의 울음소리가 섞이면서 소설은 끝난다.
‘라 마르세예즈’는 1792년에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할 때 군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어느 공병 장교가 만들고 1879년에 프랑스의 국가로 정식 채택되었다. ‘자유여, 사랑하는 자유여. 더불어 투쟁하라, 그대의 수호자들과!’라는 비장한 가사의 국가가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소설 속 승합마차 안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재편된 사회의 축소판이다.
혁명 이후 사회 주체세력으로 떠오른 계급은 ‘부르주아’였다. 도시를 가리키는 ‘부르(bourg)’에서 나온 말로 ‘성(城)안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 이 용어는, 원래 성안의 모든 실질적 활동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을 일컬었던 말이다. 노동과 생산활동의 수혜자였던 성직자나 귀족과는 달리, 제3신분인 부르주아는 산업과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회 활동의 주체가 되어 갔고, 1789년에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삼부제 회의에서 시민계급을 대표하며 혁명의 흐름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혁명정부, 나폴레옹의 시대, 7월 혁명을 거치며 가장 힘 있는 사회 계급으로 등장한 부르주아.
하지만 억압과 불공정에 항거하며 혁명을 성공시킨 그들은, 소설에서 보듯이 그들이 그렇게도 경멸하던 억압의 주체로 변질 중이다. ‘피압제자들이 자유를 향한 노력을 해나가는 대신에 스스로 압제자가 되어버린다’라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말이 떠오른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은 시대에 따라 이름만 바뀌고, 소외되고 핍박받는 계층은 그들의 불행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계속 존재해 왔다. 인류는 왜 이렇게 위계성 이분 구도를 사랑해 온 것일까. ‘나의 발아래 너’가 아니라 ‘나와 함께 발을 맞춰가는 너’는 영원히 불가능할까.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는 한 손에는 장총을, 다른 한 손에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를 든 ‘자유의 여신’이 그려져 있다. 그녀의 뒤로 자유를 향해 한 마음으로 전진하는 군중들의 모습이 보인다. 중절모를 쓴 신사도, 공장 노동자도, 농민의 모습도 보인다. ‘엘리자베트 루세’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 ‘비곗덩어리’도 당당하게 그들 속 어딘가에 섞여서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지위고하, 빈부 차이를 막론하고 한 마음으로 발을 맞춰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동행’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저 하찮아 보이는 하류 인생, ‘비곗덩어리’에게도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고유한 이름, 인격, 자존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동행으로 가는 첫걸음이리라.
기 드 모파상『비곗덩어리』(1880) (정혜용 옮김, 시공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