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어렵나요(1) : 들어가는 말
“나는 목적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 구제받을 길 없는 약자들, 상담도 변호도 받을 수 없는 자들,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독일의 판화 예술가 케테 콜비츠(1867~1945)다. 비싼 유화 대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판화를 표현 매체로 선택한 콜비츠는, 예술이 시대의 증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들은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밀착취재한 르포르타주 같은 느낌을 준다.
5년에 걸쳐 작업한 연작 시리즈 ‘직조공들’ 중에서 <죽음>(1897)이라는 작품을 보자. 골방에 남루한 옷을 입은 부부와 아이가 있다. 여자는 힘없이 한쪽 벽면에 기댄 채 앉아 있고, 남자는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실직 상태가 길어지고 있는 직조공이다. 아이 옆에는 아이의 목을 짓누르듯 감싸 안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데, 그는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다. 죽음의 신이다. 오래 굶주린 탓에 퀭하게 눈을 뜨고 있는 아이는 이미 레테의 강 어디쯤을 건너가고 있는 표정이다. 그런데도 부모는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다. 가정의 숨통이 끊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직조공 부부의 한숨이 판화 바깥까지 새어 나오는 듯 생생하다.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그렸던 콜비츠는 전쟁이 나자 강대국의 이권 다툼 앞에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확장한다. 대의명분 없는 전쟁에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는 정권에 저항하며 <전쟁은 이제 그만>(1924)을 발표했고, 전쟁의 참상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세 아이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가두고 있는 엄마의 결연한 모습을 담은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1942)를 세상 떠나기 불과 몇 년 전에 발표했다.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예술로써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던 콜비츠를 보면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순기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스티븐 핑거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충격적 이리만치 폭력적인 낯선 나라’가 바로 인류의 과거라고 말했듯이, 우리의 과거는 차별과 착취,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역사서에는 기계로 살아야 했던 직조공의 깊은 한숨, 아이를 전쟁터에 내보낸 엄마의 눈물 이야기가 없다. 백인에게 착취당했던 흑인 노예의 슬픔도,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대 위에 섰던 열일곱 소녀의 못다 핀 꿈 이야기도 없다.
이런 이야기들은 문학과 예술이 해 오고 있다. 엄중한 소명이다. 다행히 우리 곁에는 콜비츠와 같이 역사적,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졌던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전해주는 과거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우리는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쓰며 그의 아내 앤 드루얀을 위한 헌사를 남겼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우연히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 동 시간대를 함께 살다 가는 것은 세이건의 말처럼 기쁨이며 또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 씨실 날실이 크로스 되는 기적의 순간을 함께 하면서 동행의 기쁨만을 누릴 수는 없었을까. 우주적 관점에서는 고작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 토닥여주는 일이 왜 그리 어려웠느냐고 질문하는 소설들을 이제 만나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