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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Oct 30. 2022

중력이 그리워

지구의 종말을 상상해 보았나요(3): 릴리 브룩스돌턴『굿모닝 미드나이트』

중력이 그리워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저녁이 되어 돌아왔더니 집이 보이지 않는다. 푸른 지붕도 온데간데없고 모든 것이 새까맣게 불타서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불빛 하나 없는 골목길에서 한 때 나의 집이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눈물이 난다. 여기가 집인데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꿈 이야기가 아니라 릴리 브룩스돌턴이 쓴『굿모닝 미드나이트』의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이야기다.


『굿모닝 미드나이트』는 독특한 지구 멸망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아포칼립스 서사는 지구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소설에서는 수명이 다한 지구를 밖에서 바라보는 두 개의 서사, 설리와 어거스틴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두 개의 이야기는 분리된 채 떠돌다가 어느 한순간 교차점을 지난 뒤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마치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두 개의 별이 스칠 듯 지나가지만, 다시 몇억 광년 거리로 멀어지듯이 말이다.    

 

▫️불 꺼진 지구  


설리의 이야기부터 만나보자. 지난주 그녀는 개인으로서는 영광이요, 인류에게는 기념비가 될 일, 목성 탐사에 성공했다. 우주로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그녀를 포함한 우주비행사 여섯 명은 먼 우주까지 탐험한 최초의 우주인으로서 에테르 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 중이지만 우주선 안 분위기는 무겁다. 목성 탐사 직전부터 지구 관제소와의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일시적인 통신 장애로 보기에는 두절이 너무 길어지고 있었다.


환호성으로 축하해 주어야 할 지구의 긴 침묵 앞에서 탐사대원들은 두렵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불안이 그들을 따라다닌다. 낮에는 아무 일 없는 듯 서로 웃으며 대화하지만, 밤의 수면 격실은 각자에게 두려운 상상의 공간이 되어간다. 핵전쟁, 소행성 충돌, 전염병이라는 말이 좁은 수면실 안을 교대로 침범한다. 아무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마지막 남은 인류가 되어 우주를 떠도는 노매드로 생을 마감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들의 밤을 장악한다.


같은 시각, 지구의 끝자락에서 또 다른 두려움으로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사람이 있다. 북극의 툰드라 지대에 있는 78세의 노인, 어거스틴이다. 천문대 연구원 자격으로 북극에 체류하고 있지만 사실 1년 전부터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바깥세상에 뭔가 엄중한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파다할 때 그를 제외한 모두가 이곳을 떠났다. 어거스틴은 자의로 이곳에 홀로 남았다. 그는 남은 날들을 이곳에서 별을 보며 지낼 생각이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지구에 남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고 극지방을 제외한 온 세상이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였다는 소식을 들은 지 1년이 지난 지금, 어떤 얘기도 더 이상 바깥세상으로부터 들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고립을 원했던 그에게 돌아갈 세상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불안이 점점 마음속에서 커지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는 아이리스 때문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함께 살게 된 여덟 살짜리 여자 아이 때문에 어거스틴은 괴롭다. 그가 죽게 되면 아이가 혼자 어떻게 살아나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제야 보이는 것들


토성 궤도를 도는 타이탄에 관한 연구를 국내 최초로 수행한 천문학자 심채경이 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문학동네, p. 13)    

 

설리와 어거스틴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인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성취감과 보람으로 살아온 사람들. 우주 통신 전문가인 설리는 무한의 우주와 교신하며 인류를 위해 미지의 세계를 탐사한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다. 천문학자인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였다. 130억 년 전에 일어났을 일을 생각하며 하늘을, 별을 올려다보는 데 일생을 바쳐 왔다. 이들의 탐사와 연구는 모두 지구와 인류에게 도움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열정을 바쳐 온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 돌아갈 지구도, 축하하고 반겨줄 인류도 없어져 버렸다. 인류와 그 인류를 아틀라스처럼 떠받치던 지구가 함께 블랙아웃의 시간으로 들어가 버린 지금, 설리는 생각한다. ‘목성의 달들에 대한 조사와 발견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연구를 계속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주에 관한 연구와 탐사에 대한 헌신은 그 일을 보람 있게 받아들일 지구와 인류가 살아 있을 때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불현듯 깨닫는다.


설리는 이 순간 딸의 사진 한 장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목성의 사진도, 그 영향권 아래 놓인 소행성들의 사진도 아닌, 수면실 벽에 붙여놓을 딸의 사진 한 장. 그녀는 2년간의 탐사 기간 동안 훌쩍 커 있을 딸에게 우주로 간다는 말도 차마 하지 못하고 떠나왔었다.


그리고 그녀는 간절하게 기다린다. 지구로부터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우주선의 통신전문가인 설리에게는 항성과 행성들에서 수신되는 신호들, 관제 센터에서 보내오는 명령어만큼 중요한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지구의 침묵 앞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 일들이 생존을 알리는 목소리 하나의 가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무엇을 위해 일해 왔던 것일까.   

   

지금에 와서는 목성 탐사가 얼마나 의미 없이 느껴지는지,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수신기로 단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어도 그들이 목성에서 수집한 모든 자료와 그들이 알아낸 모든 지식을 맞바꿀 수 있을 터였다. 단 한 사람의 목소리만이라도. (p. 136)     


어거스틴에게도 지구 종말의 소식은 그가 잊고 살았던 것을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그는 30대에 이미 찬사와 존경을 받는 과학자가 되어 있었다.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가족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에 관심이 없었던 그에게 가족이 생길뻔한 일은 있었다. 40년 전, 과학자 ‘진’을 만나고 그녀가 그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자식이라는 무한 책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는 낙태를 권했지만, 진은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났다.


세상의 끝, 북극에서 맞이하는 세상의 종말. 어린아이, 아이리스와 함께하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거스틴은 부성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아이리스에게 먹일 것이 없을까 걱정하고, 추울까,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는 깨달아간다.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세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늘 시선을 먼 곳에만 두려고 했다는 사실을. 그가 적극적으로 교신해야 할 대상은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어거스틴의 죄책감과 후회가 만들어 낸 환영, 아이리스는 여덟 살 무렵의 설리, 즉 아이리스 설리번이다. 서로가 부녀 관계인지 모르는 채 기적과도 같은 짧은 교신이 이들 사이에 일어나지만, 곧 다시 서로 무존재의 상태로 멀어진다. 우주 공간과 북극에서 미미한 생존 신호라도 잡아보려고 애쓰던 이들이 교신에 성공하고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는 왜 잃어봐야 소중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미리 알 만큼 지혜로워질 수는 없을까. 지구를 떠나보고서야, 지구의 종말을 알게 되고서야 설리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신록이 우거지고 다채로우며 아름답게 보호받는 존재가 이 모든 공허 속에서 나타날 수 있었을까?’ 무한의 우주 공간에 기적처럼 생겨난 아름다운 행성, 그리고 그가 중력으로 받쳐온 소중한 인류가 방사능 낙진 속으로 허망하게 사라지는 일은 부디 없기를 빌어 본다.      


▪️Good Night-Day, Good Morning-Midnight   

  

종말을 맞이한 지구로 귀환하는 설리와 우주비행사들은, 초기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어두컴컴한 미지의 땅에 첫발을 디딜 것이다. 한때 그들의 집이었던 그곳에 여전히 중력이 존재할까. 이들 마지막 인류는 붙들어 주는 그 힘을 믿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소설의 제목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 따 온 것이다. ‘Good Night, Day’라며 이전의 지구에 작별을 고하고, ‘Good Morning, Midnight’이라고 잿빛 세상을 향해 두려운 첫인사를 건네야 할 시간이 온다면, 당신이 그 인사를 건네야 할 마지막 인류라면 어떨까. 아무것도 기약해주지 않는 소설의 엔딩을 보며, 미래라는 시간을 향해 오픈 엔딩으로 열려 있는 현재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Good Morning, Day’라고 인사할 수 있는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다.                


 릴리 브룩스돌턴『굿모닝 미드나이트』(2016), (이수영 옮김, 시공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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