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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Oct 30. 2022

송어는 돌아올까

지구의 종말을 상상해 보았나요 (2) : 코맥 매카시 『로드』(2006)

송어는 돌아올까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그때는 언제가 될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될까. 우리 행성에 돌이킬 수 없을 비극을 안길 위험 요소로 화산폭발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슈퍼화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화산이 앞으로 10만 년 안에 폭발한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10만 년이라니 아직 먼 미래 이야기 같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1초와 같은 시간이다.


태양의 죽음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대략 100억 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태양이 태어난 지는 45억 년이 지났고, 50억 년만 지나도 적색거성으로 진화한다. 그동안 지구가 받는 에너지양은 점점 증가해서 아마 용암 행성처럼 흐물거리다가 태양에 의해 마지막 숨을 거둘 것이다. 산술적 계산으로 대략 5, 6억 년 후에 우리 인류는 우주에서 먼지 조각 하나로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지구의 멸망이 5억 년 후가 될지, 10만 년 후가 될지, 바로 10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죽음에도 자연사가 있고 돌연사가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지구 멸망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직접 보는 최후의 사피엔스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흑백의 색채로만 남아 있을 아포칼립스의 세상을 한 번 상상해 본다.


유례없는 강력한 화산폭발이 일어난다. 거대한 재 구름이 형성되고 지표면에 치료 불가의 화상을 입힐 용암이 끝도 없이 흘러내린다. 온갖 파편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땅 위의 모든 것을 초토화하고 유독가스와 열기로 지구상 생명체는 거의 전멸된다. 모든 것이 화산재로 뒤덮여 땅과 하늘의 경계가 무너지면 지구와 태양과의 오랜 인연도 끝나면서 화산 겨울과 함께 빙하기가 시작된다. 냉혹한 먹이사슬 속에서 초목도 야생동물도 인간도 얼어 죽고 굶어 죽는다. 대폭발을 예측은 했지만, 대비책은 하나도 마련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인류는 차디찬 얼음 땅 위에서 마지막 생존자의 죽음을 본다. 멸종이라는 준엄한 판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는 상상은 더 가혹하다. 집도 가족도 다 잃고 어느 차가운 땅 위에서 눈을 뜬다.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누가 살아남았는지 누가 죽었는지도 모를 땅 위를 조심스레 디뎌본다. 인류 최후의 생존자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미 죽은 자들을 부러워하며 계절조차 사라진 하루하루를 숨이 끊어지지 않아 할 수 없이 살아내야 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할까.     


▫️날 것의 세상


이런 상상을 코맥 매카시가『로드』(The Road)라는 소설로 탄생시켰다.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인류에게 닥친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이의 처절한 생존기이다. 암회색 빛만 남은 세상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그들이 향하는 곳은 따뜻함이 아직은 남아 있을 거라고 애써 기대해보는 남쪽 해안이다.


희망을 찾아 나선 길 위에서 소년은 이미 오래전에 열기에 타서 죽은 사람들, 얼어 죽고 굶주려 죽은 사람들, 꼬챙이에 꿰어 카니발리즘의 희생자가 된 시체들을 본다. 가도 가도 시체들 뿐인 세상과 만나는 소년에게는 삶보다 죽음에 관한 질문이 더 많아진다. ‘우린 죽나요?’.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죽은 사람들보다 어쩌다 마주치는 한두 명의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워진 세상, 생존을 위한 식인이 처절하게 자행되는 날 것의 세상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스스로에게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법이었다. ‘그걸 입 안에 넣고 위를 겨냥해. 빨리 세게 해야 해. 알았지? 울지 말라니까. 알아들었지?’.     

 

▫️가치의 재편


파괴된 지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본 것은 ‘만물의 덧없음’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버려진 집에서 금화로 가득한 단지를 발견하지만, 곧 깨닫는다. 금 한 단지가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한 캔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도서관의 책들도 마찬가지다. 까맣게 타버려 폐허가 된 도서관을 보며  ‘줄줄이 수 천 권으로 배치되어 있던 거짓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세상이 끝났는데 묵직한 금과 위대한 사상가의 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류가 소유하고 향유하던 문명은 그들이 찾아낸 빨간 코카콜라 캔만큼이나, ‘숯으로 스케치해 놓은 것 같은’ 흑백의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언제 존재라도 했었나 싶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결국 그들은 가장 중요한 가치 하나를 깨닫는다. 금도 아니고 책도 아닌, 최상위에 두어야 하는 절대적 가치. 그것은 바로 생존이었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 중요한 것은 오로지 살아남는 것뿐이라고 남자는 생각한다.   

   

글쎄, 나는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p. 303)  

   

▫️그래도 남아 있는 것


모든 것을 앗아간 지구의 종말이 끝끝내 빼앗지 못한 것이 있었다. 기억과 추억이었다. 아침에 눈 뜬 것이 하루 일 중에 가장 용감한 일이었다며 하루 단위로 현재를 버텨나가는 남자에게 기억과 추억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동력이었다. 우연히 옛날 자신이 자란 낡은 목조가옥을 마주한 남자는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겨울밤 불 가에 앉아 숙제하던 기억들, 가족과 함께하던 크리스마스의 추억들이 그를 잡아둔다. ‘가야 해요, 아빠’라고 소년은 재촉하지만 남자는 ‘그래’라고 말하면서도 차마 떠나지 못한다.


남자에게 행복했던 기억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서로서로 잡아먹는 세상을 견디지 못하던 눈먼 아내는 아이와 남편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이도 엄마가 스스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내를 생각하면 마지막 기억 때문에 슬프지만 남자는 꿈에서라도 아내를 만나고 꽃을 본다. 아이가 잠든 틈에 아내의 이름도 큰 소리로 불러본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소중했던 사람이 기억 속에라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고통일까, 위로일까.


마침내 남자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고, 차가운 바닥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남자가 아이에게 물려준 것도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었다. 낯선 남녀와 동행하게 되는 아이는 기억 속의 아버지와 대화하며 그가 했던 것처럼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p. 323)     


세상을 지탱하던 모든 물질이 ‘무(無)’로 수렴되어도, 인간에게는 절대 ‘무(無)’가 될 수 없는 소중한 무엇이 남는다는 작은 희망의 서사를 작가는 쓰고 싶었던 것일까. 인간의 기억과 함께 그가 끝까지 남긴 것은 뜻밖에도 인류애였다.

잔혹함을 먼저 배우고 냉혹한 생존의 법칙을 일찌감치 터득할 법도 한 데, 소년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자주 운 것은 식인의 세상이 두려워서도, 죽음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벼락에 맞아 타 버린 사람을 도와주지 못해 울었고, 구하지 못한 아기 때문에 울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통조림을 배곯는 노인에게 나누어 주는 소년은 바로 어린 성자였다. 우린 아무도 안 잡아먹을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요.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까요’라고 말하는 소년.


소설이 소년의 죽음이 아니라 생존으로 끝나는 데서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한다. 행복, 기쁨, 슬픔의 기억들과 함께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한 마음만 남아 있으면 하늘인지 땅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잿빛 세상에서도 인간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지나친 낙관이라고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인류의 끝이 조만간 올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 때문이다.


남쪽으로 향하던 ‘로드’에서 매일의 생존법을 익히며 힘을 키우던 소년은 찾아 나섰던 불을 결국 찾아내어 온 힘을 다해 세상을 환히 밝힐 것이다. 그리고는 어떤 순간에도 저버리지 않았던 인간애를 바탕지 삼아, 다시 한번 생성의 긴 여정을 떠나는 세계 지도를 한 구역 한 구역 정성스레 그려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때 산의 냇물에 살았다는 송어가 다시 힘차게 헤엄쳐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으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렀고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 (p. 323)     

코맥 매카시『로드』(2006),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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