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종말을 상상해 보았나요(1) : 들어가는 말
백 년 후 혹은 천년 후에,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건재하는 지구에서 인간은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갈까, 아니면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한때 존재했던 무(無)가 될까.
이론 물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는『인류의 미래』에서 곧 닥쳐올 인류의 종말을 예고한다. 소행성 충돌,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켜버리는 태양, 화산폭발로 인한 빙하기의 도래 등으로 지구는 결국 소생 불능상태에 이를 것이며 지구를 숙주 삼아 사는 인류도 함께 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7만 5천 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토바 화산 폭발에서는 현생인류의 조상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런 행운이 두 번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극적 예측도 함께 내놓는다. 그의 말대로 지구의 종말을 향한 시계는 이 순간도 멈추지 않고 가고 있을까.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22년 9월 26일, 인류는 우주선과 소행성의 충돌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일어날지도 모를 비극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기획한 인위적 충돌이었다. 약 10개월 전에 미 항공우주국이 쏘아 올린 우주선은, 이날 충돌 4시간 전에 마지막 경로를 조정한 뒤 충돌 2분 30초 전부터 이온엔진을 끄고 관성의 힘으로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성공적으로 충돌했다. ‘다트(DART) 미션’이라는 이름답게 정확하게 목표물에 꽂힌 성공적인 지구 방어 시험이었다. 이 충돌로 소행성의 속도는 늦춰지고 궤도는 수정되었다. 영화 <딥 임팩트>가 현실이 되며 지구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앞으로도 인류는 과학의 힘을 빌려 지구에 해가 될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불안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행성 간 충돌이나 슈퍼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보다, 핵 버튼을 꾹 누르는 어느 국가의 어리석은 수장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VR 저널리즘의 선두 주자인 노니 데라페냐가 기획한 <프로젝트 시리아>는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받는 민간인들의 참상을 가상현실처럼 체험하게 해주는 영상 프로젝트이다. 헤드셋과 고글을 쓰면 2014년 시리아 알레포 지역의 민간인 마을에 로켓포가 떨어진 현장을 3D 영상으로 볼 수 있다. TV를 통해 한 줄 속보로 전해지는 뉴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포의 체험이 가능하다. 폭탄이 떨어진 현장에서 여기저기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피 흘리는 딸을 안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다.
‘그곳에 당신이 있다(You are there)’가 VR 저널리즘의 핵심이라고 데라페냐는 말한다. 전쟁을 일으켜 민간인을 희생시키면서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말로 죄의식을 덜어내고, 핵 버튼을 수시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VR 영상 속 전쟁의 한복판에, 핵폭발의 끔찍한 현장에 세워 두면 좋겠다. 굳이 체험해 봐야 알 것 같다면 말이다.
이 장에서 다룰 두 편의 소설은 지구의 종말이 온 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최후의 인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문명의 불빛이 꺼진 흑백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갈 곳은 있을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코맥 매카시와 릴리 브룩스돌턴의 소설이 우리를 그 현장으로 데려다준다. 이야기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자신이 초래할 비극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그 사람들이 먼저 그곳에 가 보면 좋겠다.
지구의 종말을 상상해 보았나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