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슨 매컬러스 『슬픈 카페의 노래』
아무리 야비하고 천하고 멸시할 만한 것이라도 사랑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것.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만 보게 되나 봐. 그래서 날개 있는 큐피드를 소경으로 그렸나 보지.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에 분별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다구. 눈은 없고 날개만 있는 것은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성미를 말하는 거야.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1막 1장)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으며 셰익스피어의『한여름 밤의 꿈』이 떠올랐다. 이 극에는 ‘사랑 조작단’이 등장한다. 숲속에 사는 요정의 왕 오우버런과 그가 부리는 퍼크다. 눈꺼풀에 바르는 사랑의 묘약, ‘꽃즙’을 이용해서 요리조리 연인 매칭에 나서지만 어설픈 퍼크때문에 큐피드의 화살은 얽히고설킨다. 엉뚱하게 뿌려진 꽃즙으로 인해 라이샌더와 디미트리어스가 동시에 헬레나를 사랑하게 되고, 요정계의 여왕 타이테이니어는 당나귀 머리를 한 천민 직공 보틈에게 반해 버린다.
꽃즙이 뿌려진 사람들은 분별력을 상실한다. ‘눈은 없고 날개만 있는’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기 때문이다. 당나귀 머리를 하고 동물의 콧소리로 힝힝대며 노래하는 보틈에게, ‘제 귀는 당신의 노래에 반했어요. 제 눈은 당신의 그 자태에 홀렸고요’ (3막 1장) 라고 타이테이니어가 고백하는 것을 보라. 자신도 설명할 수 없고, 남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샘솟는 기이한 상태. 첫눈에 반한 사랑이다
『슬픈 카페의 노래』의 미스 아밀리아가 바로 타이테이니어처럼 오우버런이 지배하는 숲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성급하고 기이한 사랑에 빠지는 데다 어긋난 사랑의 화살표 때문에 고통받는다. 조절기가 달리지 않은 감정은 갈 데까지 가 버리고 비극은 당연한 결과처럼 따라붙는다.
셰익스피어의 ‘눈먼 큐피드’를 연상하게 하는 카슨 매컬러스의 사랑론 일부를 옮겨보겠다. 라이먼을 향한 아밀리아의 사랑에 대한 변론이다.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반한 사실이 무려 세 쪽에 걸쳐 길고 장황한 설명을 해야 할 만큼 이상한 일일까. 아밀리아의 사랑이 어떠하길래 사랑의 가치와 질에 관한 판단은 당사자가 하는 것만 유효하다는 옹호가 필요할까.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p.p. 50~51)
아밀리아와 라이먼의 관계를 보기 전에 그녀와 마빈 메이시의 관계부터 보자.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대를 이어 생필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밀리아는 결혼 전력이 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사람이 마빈 메이시였다. 그는 마을 부랑아였지만 아밀리아를 짝사랑하면서 새사람이 되었고, 청혼을 받아들인 아밀리아와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열흘 만에 끝이 났다. 아밀리아의 냉담함 때문이었다. 결혼 승낙을 한 이유와 결혼을 끝낸 이유를, 당사자인 마빈을 포함해서 마을 사람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소중한 물건들을 다 바치고도 사랑에 실패한 마빈은 끝없이 추락해서 예전처럼 온갖 악한 짓을 일삼다가 감옥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사랑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잘 생기고 헌신적이었던 남자 마빈을 버렸던 아밀리아가 이번에는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상대가 쓰레기만 가득한 낡은 가방을 들고 아밀리아의 사무실을 느닷없이 방문한 남자, 라이먼이다.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고 남자 같은 튼튼한 골격과 근육을 가진 여자가, 140센티미터의 신장도 안 되는 떠돌이 꼽추에게 반하다니.
만난 날 바로 타이테이니어가 머무는 정자를 차지한 당나귀 청년처럼, 라이먼도 아밀리아의 사무실에 들른 그날부터 그녀와 함께 살게 된다. 마빈을 흠씬 두들겨 패서 내쫓고, 그 이후로는 사소한 일이라도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소송 걸기를 취미생활로 해 온 난폭한 아밀리아. 그녀를 오랜 세월 보아 온 마을 사람들은 끔찍한 살인사건-아밀리아가 라이먼을 죽이고 수갑을 차고 끌려 나오는-을 상상하지만, 꼽추의 등에 난 혹을 그녀의 손가락이 쓰다듬던 첫 만남 이후 6년에 걸친 그녀의 사랑은 순종과 헌신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사무실이 카페가 된 것도 따끈하게 데운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기는 라이먼에 대한 배려였다. 그녀의 은행 통장들은 당연히 라이먼의 것이 되었고, 그가 우울하거나 표정이 좋지 않을 때마다 아밀리아는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선물 찾기에 급급했다. 마빈과의 관계를 돌아볼 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변화였다.
불행은 이들의 감정에 상호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미스 아밀리아는 꼽추 라이먼을 사랑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확실했다’라는 문장에 비할 만한 라이먼의 감정 상태는 소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밀리아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는 그저 그녀가 필요했을 뿐이었을까. 사랑의 대상이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다’(p. 50)라고 소설이 말하는 것처럼, 라이먼의 사랑은 엉뚱한 사람을 향했다. 애증에 불타서 아밀리아 앞에 다시 나타난 마빈 메이시였다.
이 기이하고 역동적인 사랑의 행보는 오우버런의 꽃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난폭한 여자 아밀리아를 한때 사랑했고 그 미련 때문에 다시 찾아온 남자, 마빈. 그를 버리고 자신에게 살뜰하지 않은 라이먼을 선택한 아밀리아. 그저 살 곳이 필요해서 혹은 외로워서 아밀리아의 집에 눌러앉은 듯한 라이먼. 그리고 그가 뜬금없이 사랑하는 남자 마빈.
이들의 지그재그 관계는 아밀리아의 치명상으로 끝난다. 치명상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연이 남긴 영혼의 깊은 상처가 그녀를 회복 불능 상태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6년 동안 순애보를 바쳤던 남자가 다른 남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때려눕히고, 죽일 요량으로 자신이 쓰는 음식 그릇에 독약을 넣고, 결국 그 남자와 함께 떠나버린 후 아밀리아는 다시 예전의 모습이 된다. 아니 더 난폭해지고 더 신랄해지고 더 예민해진다. 무엇보다 슬픔과 고독 속에 늙어간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모든 비극을 겪은 후에도 그녀의 눈꺼풀에 발린 꽃즙은 서서히 말라갔다는 것이다. 잔인한 배신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는 듯, 아밀리아는 이후 3년 동안을 매일 밤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자신을 버리고 마빈과 함께 떠나버린 나쁜 남자 라이먼을 기다린다. 그러더니 4년째 되던 해 마침내 집을 완전히 폐쇄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밀리아의 사랑을 지켜보며 활기를 띠던 마을도 아밀리아처럼 황량한 모습이 되어 간다.
슬픈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소설은 ‘언젠가는 죽을 열두 명의 인간’이라는 제목의 글을 덧붙이며 ‘공식적으로’ 끝난다. 앞부분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제목을 달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부분을 에필로그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은유와 압축을 통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한 이 짧은 글은 함께 묶여 있는 열두 명의 죄수와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관한 내용이다.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그 소리들이 열두 명의 죄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또는 드넓은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이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열어주고 희열과 공포로 몸서리치게 한다. 그러다가 서서히 노랫소리가 잦아들어 한 가닥 외로운 선율만 남게 되면 다시 침묵 속에 거친 숨소리와 태양, 그리고 곡괭이 소리만 남을 따름이다. (p. 131)
함께 묶여 있는 열두 명의 죄수는 우리 인간들이다. 다시 굴러떨어지기만 하는 큰 돌을 매일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올리는 벌을 받았던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진흙땅을 파는 벌을 매일 감당하는 우리는 이 땅에 묶여 있는 죄수들이다. 땀이 나고 힘들어도 곡괭이질을 멈출 수 없다. 고독과 외로움은 삭여야 한다.
이런 우리에게도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우버런의 꽃즙이 눈에 뿌려질 때다. 사랑이 시작되면 희열이 하늘 끝까지 차오르지만, 사랑이 끝나면 다시 외로운 침묵 속에서 곡괭이질을 해야 하리라. 그렇다고 한들, 사랑은 짧고 외로움은 길다고 한들, 끝없는 곡괭이질이라는 고독한 무한 루프 속에서 한두 소절 기쁨의 노래를 부를 여유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열두 명의 인간들’인 우리는 오늘도 기이한, 어리석은, 유별난 각자의 사랑을 한다. 곧 슬픈 곡조로 잦아들 노래인 것을 알고도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슬픈 카페의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오우버런의 꽃즙 향연을 마음껏 즐겨보라. 라이먼이 돌아오지 않아도 아밀리아의 사랑의 가치는 여전하다. 뜨겁게 사랑하고 완벽하게 외로운 그녀의 사랑은 여전히 슬프고도 눈부시다.
『슬픈 카페의 노래』(1987), 카슨 매컬러스 (장영희 옮김, 열림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