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H Nov 16. 2021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저는 전생에 소였나 봅니다.

워크 밸런스를 중요시하는 시대에 평일 야근은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주말만큼은 주말답게 보내고 싶은 게 월-금 근무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마음일 겁니다. 


그러나 가끔씩 주말을 이용해서 워크숍을 다녀온다거나 행사가 잡히면 주말 출근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회사 재량에 따라서 토요일 일요일에도 근무를 하면 주중에 연차를 쓸 수 있게 해 주지만 다른 업무가 밀려있으면 그 연차를 쓸 생각도 못해요. 강제로 쓰게 하더라도 집에서도 영락없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핸드폰을 붙잡고 온갖 일을 쳐내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산업별로 바쁜 시기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많은 업무가 디지털화되면서 그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어요. 그래서 조금씩 이유만 바꿔가면서 자주 프로모션을 기획하다 보니 주말 출근도 묵묵히 해내야 할 때가 많더라고요.


월급이라도 많이 받으면 받은 만큼 일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경우라면 '내가 주말에도 일할만큼 이 일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기 시작해요. 그렇게 속으로 득과 실을 따지면서 생각이 어지럽혀지니 일에 집중도 못하고 자꾸 헛소리를 하게 돼요.


별의별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까지 던지게 돼요.


열심히 일한다고 한들 회사가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굴레를 쉽게 끊어낼 수조차 없어요.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다 보면 뭐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저 채찍질과 이끌림에 앞으로 나가는 소가 됩니다.


음메~(주인아~) 음메에에↗(주말에는) 켁(좀) 음메에에에↘(쉬자!!!)


주말 업무를 지시한 상사도 같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고 그냥 저 멀리 도망가고만 싶거나 상사를 다른 곳으로 치워버리고 싶어요. 주말에는 직장인 모드를 접고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은데 점점 느려지는 머리 회전과 꼬여만 가는 혀 그리고 굼뜬 행동들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버려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몸뚱이가 무의식적으로 공간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는지 상사가 '힘내!'라는 소리와 함께 일 빨리 정리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을 합니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백 번 이해하고 또 이해하지만.... 

정말 죄송한데... 거절해도 될까요? 


진짜 혼자 있고 싶습니다만... 


저도 가끔씩은 '일 많은 것도 나름 복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엄청난 인생의 행운처럼 느껴져요. 왜냐하면, 저는 아직까지도 켜켜이 쌓여만 가는 일을 '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쌓여있는 일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돈의 액수를 떠나서 일하는 즐거움을 깨닫고 충분한 보람을 느낄 날이 제대로 올는지 참 궁금합니다. 


참... 소 같은 내 인생.





이전 05화 잡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