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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Nov 16. 2021

쉬고 싶다

라고 말하면 영영 쉬게 될까 봐 무서운 직장인

평소 습관 때문에 주말에도 일찍 일어나는 직장생활 1년 차가 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그건 바로 연중 계획 세우기예요.

 

11월부터 작성하는 사업계획서를 말하는 거냐고요? 


아니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음 해에는 공휴일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개인적인 휴가 계획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학교처럼 수업일수를 채우면 방학이 시작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휴가를 잘 활용하여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거나 업계 내에서 알아주는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내가 맡은 업무를 대신해 줄 직원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펑크 내지 않는 선에서 계획을 할 수밖에 없어요.


시즌별로 회사 내외부적으로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같은 팀 동료들이 어떠한 계획을 세워서 움직일 건지 서로 눈치 싸움이 시작됩니다.  


가령 영업관리 업무 또는 회계업무 담당자라면 월 마감과 세금계산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월말, 월초에 연차를 쓰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주초 또는 주말에 실적 보고와 미팅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주말을 붙여서 연차를 쓰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정말 부득의 하게 생기는 개인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휴일과 연차를 붙여서 쓰고 싶다 하더라도 결재라인에 있는 상사분들이 안된다고 하면 그냥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플랜 B를 구상하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분위기상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는 거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열정만 가득한 눈치 없는 사수가 황금연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끔 일을 만들어오면 마음속에서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해요.


시도해 봐서 나쁠 거 없는 일이라고 말하시는데... 


여러 번 고쳐 생각해도 시도해 봐서 나쁠 거 없는 일이 아니라 시도해 봤자 남는 게 하나 없는 일이에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냅다 RUN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느끼는 건 저만 그런가요?


당연히 회사는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검은 속내를 감춰두고서라도 열정을 다하는 직원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긴 해요. 하지만 계획에 없던 일들이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오면서 개인적인 삶의 균열이 생기면 뻔뻔하기 그지없는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겉으로 표출해내지 못한 불만 때문에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그냥 참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사수가 일을 만들어오든 말든 남일이라 생각하고 빌런처럼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입이 한대 발 나와있으면서도 속으로 분노를 삭이면서 우선 하라는 대로 일을 하기는 해요.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속에서는 하기 싫다는 마음과 열렬하게 싸우고 있는데 탈이 안 나고 배기지 못할 거예요.


상사 본인의 쉬는 날을 반납해 가면서 일하는 건 뭐라 할 수 없어요. 그런데 까라면 까야하는 아래 직원들은 소중한 휴일이 날아가게 되면 알게 모르게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아 실수가 잦아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마음의 상처도 크게 입게 돼요. 연봉 테이블에 따라 상사분들은 책임지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일개 사원들은 열정을 보일만큼의 돈이 통장에 찍히지 않잖아요?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은 사원들인데 과연 직급 높은 사람들이 사원들의 경험을 핑계 삼아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어떤 도움 될까요?


결혼을 해서 가정이 있는 분들은 오히려 회사에 나오는 것이 쉬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슨 뜻으로 그렇게 회사 일에 열정을 보이는지는 알 거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서두르면서 하는 일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모두를 위한 일이기는 한 건지 의문이에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씀씀이와 채워지지 않는 물욕 그리고 크고 작은 자금융통으로 인해 생긴 책임감 등만 없었더라면 그냥 박차고 나왔을 텐데... 


쉽게 그러지 못하는 건 월급을 포기할 만큼 어렵거나 당장 못할 일은 아니어서 쉬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직장인으로서 그냥 그렇게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원하는 때에 쉴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연차와 공휴일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짬이 생겼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과 투닥거리는 나 자신을 느끼면 가끔 왜 이러고 사나 현타가 세게 와요. 


아침에 눈을 떠서 급 연차를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힘은 안 나겠지만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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