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통화에서
빨래방에 빨래하러 갔어. 세탁기가 고장 났거든.
엄마: 거긴 빨래방 얼만데?
나: 건조까지 3400원이야, 좀 비싼 것 같아.
엄마: 그거 싼 거다, 한국 빨래방은 만원정도 해.
나: 헐 진짜??
엄마: 이제 뭐 하니?
나: 마사지받으러 갈려고… 어!?
나: 여기는 더 싸네… 여기로 올걸!
엄마: 얼마 더 싼데?
나: 400원!
에게!! 겨우 400원 아끼려고 그 멀리까지 가나!
젊음은 가난하다.
스무 살을 겨우 넘긴 이 시기의 우리 대부분은, 이제 막 사회라는 바다에 발끝을 적신 채 허둥대고 있다.
누구나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돈이란, 부모님 세대의 것이지 내 손에 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펑펑 쓸 정도의 돈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400원 차이에도 마음이 움직이고, 택시 대신 먼지를 맞아가며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의 지출을 계산하는 게 자연스럽다.
우리는 400원도 아껴야 할 정도로 궁핍하지만 뭐든 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과 몸이 있다.
그래서 나는 젊음만을 믿고 스물두 살에 혼자 태국 시라차라는 타지로 왔다. 400원 싼 빨래방을 찾아다니고, 택시 탈 돈이 아까워 오토바이를 타면서.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 타지에서 고생할 수 있는 건 축복이라고.
훗날 400원, 아니 400만 원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다시 이 나라에 온다면, 그 간극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질까:
지금은 시급 2300원으로 공장을 다니지만, 훗날 2300만 원을 써서 골프여행을 온다면 얼마나 감회가 새로울까. 인간은 참 단순하지, 이렇게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돈을 안 써도, 돈이 없어도 좋다.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걸.
그러니 가난한 젊음은 축복이다.
훗날 다른 느낌으로 맞이할 태국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