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한국을 만나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함이 밀려올 때의 당황스러움이 있다. 정말 상상치 못한 공간에서 데쟈뷰를 느낀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점심을 해결하러 들른 태국 시라차의 한 쇼핑몰 안에서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아니, 단순히 '본 것 같다' 정도가 아니라 너무 익숙한 느낌이라 소름이 끼쳤다. 마치 수십번은 와 본 곳처럼.
대체 뭘까, 왜 이 공간이 낮설지 않고 오히려 너무 그리운 걸까. 쇼핑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쇼핑몰의 가장 윗 층에는 푸드코트가 있고, 푸드코트 옆엔 어린이 놀이방이, 복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2010년대의 한국노래였다. 14년쯤 전, 내가 한창 초등학생일 때, 집 근처 마트에서 들리던 멜로디.
그때 내가 뭘 좋아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음악은 정확히 기억을 되짚는다. 푸드코트 옆 어린이 놀이방, 분식 냄새, 플라스틱 의자, 반쯤 열려 있는 자동문. 익숙한 구조가 시각적으로, 소리로, 냄새로 하나둘 씌워지기 시작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 풍경마저도 이토록 공감각적으로 느껴지면 기억이 살아나던가.
그리고 지금, 2025년의 태국 시라차에서 그 장면을 다시 마주한 것이다. 누가 일부러 조작해 둔 듯 정교한 과거 복제본 같았다. 한쪽 구석에선 아이들이 플라스틱 놀이기구로 된 놀이방에서 놀고있고,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한국 노래는 그 시절의 시간대에서 멈춰 있었다.순간 정말로 시간이 되감긴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여기는 분명 태국인데.
건물 구조가 비슷한게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2010년대 한국의 LG마트에선 식당가로 향하기 전 복도 양옆으로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곤 했다. 핸드폰 액세서리를 파는 가판대, 아이스크림이나 꽈배기를 파는 간이 매대, 가끔은 발마사지나 네일샵 같은 소형 점포들도 있었다. 그 풍경이 이 시라차 쇼핑몰의 복도에서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대형마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선, 이런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놀이방 앞 분식 냄새 같은 풍경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시절에는 너무 당연해서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이국의 한 쇼핑몰 안에서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마도 태국의 소도시에 있는 이 쇼핑몰이 아직 덜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에선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