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개발자들 앞에서 강의하게 된 이유
고요했던 사무실 오후 네 시, 미팅룸 문을 열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ITS 부서 15명 전원이 나만을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그 중앙에는 회사의 사장님이 앉아 계셨다.
Haha he's my boss!
라고 웃던 KSK부장님이 뇌리를 스쳤다.
아, 부장님... 그냥 상사 정도가 아니잖아요. 이분은 사장님이시잖아요.....
사장님 한명 와 있다고 잔뜩 긴장해 아무말없이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15명의 IT부서 사람들을 보니 세삼 이 회사에서 사장님의 권력이 체감됐다.
그래서, 대체 이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조금 돌려보자.
그날 오전, 부장님은 "재미있는 인턴이 있다"며 나를 사장님께 데려갔다. 어쩌다보니 나는, 그 자리에서 한 시간 가까이 내 프로젝트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AI를 혼자 공부해서 이런저런 걸 만들고 있다고 하니 사장님이 "우리 회사 개발자들은 뭐하고있나~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 AI 안 쓰고 뭐 하냐" 라며 회사의 IT부서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IT부서에는 15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공장이다보니 개발자가 적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사장님이 놀라셨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웃었다. 내가 어떤 미래를 마주할 지 조차 모른 채.
“3시간 뒤에, IT 부서 사람들 앞에서 너의 AI 활용법을 강의해보자.”
그렇게 나는 15명, 아니 사장님과 다른 부장님들 포함해서 20명의 사람들 앞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서 있게 된다. 필기할 노트와 팬까지 준비해 온 사람들 앞에서 차마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일반적인 AI활용을 보여주면 분명 시시해 할 것이다, 이들 중 개발자가 많다. 심지어 오전에 했던 미팅에서 gemini활용법이라던가 appscript같은 업무자동화 툴을 60대이신 부장님들조차 당연하게 알고 사용하고 있었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조차 AI를 이렇게 잘 쓰고 있는데 내가 개발자들이 섞여있는 이 자리에서 대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생각해 낸것이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도 코드를 짜야 한다' 라는 주제였다. 아무도 비개발자들에게 코드를 돌리란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요즘 AI가 만연한 세상에서 비개발자들도 코드 정도는 돌릴 수 있다. 단순반복작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파이썬으로 코드를 만들어서 더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개발자가 간단한 프로그램은 직접 만들어서 자신의 업무를 자동화시키면 회사의 생산력이 훨씬 증가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업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일 테니)
좋은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당연하지만 난 개발자들에겐 아무것도 알려 줄 것이 없다. 개발자들은 이미 claude code니 커서니 알아서 잘 쓰고있기 때문에.
문득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비개발자들에게 커서로 웹개발을 알려준 순간이 생각났다. (나는 사이드로 스레드, 콜로소, 클래스 101등에서 AI활용 강의를 하고 있다) 50대, 60대인 수강생들도 잘 따라해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단 4주만에 만들어낸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제 더이상 코드를 쓰는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마쳤다...
역시 어떤 경험이든 가치가 있구나.
드디어 세미나가 끝났고 긴장이 풀려 옆자리를 돌아보자, KSK부장님과 메이가 앉아있었다. 아니... 심지어 KSK부장님은 세미나가 끝나고 실시간으로 AI활용을 찬양하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아아 KSK부장님........ 세미나를 진행하는 나보다 더 신나서 AI얘기, 머신러닝 얘기를 하는 부장님의 모습을 보자 웬지모를 안도감이 밀려왔다. (부장님은 머신러닝 덕후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사장님은 내가 그들을 진짜 가르치길 바랐다기보다는, 인턴이라는 ‘낯선 존재’를 통해 조직에 뭔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를 회사에서 AI도입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어줄 매개체로 쓴게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