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사의 재벌 3세를 만나다 (1)

어떻게 일개 인턴이 COO를 만났는가

by 에밀리

난 해커톤을 무지 좋아한다. 해커톤이란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들이 모여서 2~3일 동안 안 자고 코딩만 하는 행사이다. 프로덕트를 하나 기획하고 개발하고 ppt 만들어서 발표하는걸 이틀 만에 하는 건데, 내가 이 해커톤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한때는 한 달에 3번씩 해커톤에 참가하곤 했다.


뜬금없이 웬 해커톤?


지금 내 상황이 해커톤 같다. 이틀째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개발하고, 동시에 영상도 편집하고 발표도 준비하고 있다... 어느 정도 퀄리티 있는 발표를 하고 싶기에 개발자라고 해서 ppt디자인에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디자인 레퍼런스들을 뒤져가면서 그럴듯해 보이도록 ppt를 만든다. 이렇게... 조잡하지만 그럴듯한 디자인의 ppt가 완성되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회사의 COO, 이 회사 창업주의 손자가 이곳에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직원도 아니고 과장급도 아닌 일개 인턴이 회사의 COO와 부장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프로젝트 발표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이걸 하루 전에 전해 들은 나는 발등에 불이 붙어...

아니 너무 많이 붙어서 발이 튀겨져 버린 상황에 놓인다.


큰일 났다.


아직 웹 프로그램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Computer vision프로젝트는 제대로 된 UI조차 없고, 당연히 PPT는 준비 안되었을뿐더러 기껏 만들어놓은 image processing 로직은 다른 예시파일에선 작동이 안 된다...


그날 퇴근 전, 부장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네가 내일 발표하는 대상은 태국지사뿐만 아니라 홍콩, 이탈리아, 미국, 한국, 인도, 영국, 호주 등등 법인을 총괄하는 재벌 3세라고. 그러니까 말할 때 조심해서 말하고 다른 부서도 존중하면서 말하라, 'HR한테 부탁했는데 아직 피드백을 안 줬어요'가 아닌 'HR이랑 협업해서 같이 발전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라고.


뭔가 계속해서 더 높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현실감이 없어서 부담은 안 느껴지고... 그냥 '오예 오랜만에 해커톤 한다' 이 생각만 가득 차서 부담보다는 설렘과 도파민만 분비됐다.


그렇게 나의 하루하고 반나절짜리 해커톤이 시작되었다.

keyword
이전 27화10년 전 인턴이 아직도 남아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