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착각
"MBTI에 관한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마침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거든요. 서로의 성향도 알 수 있고 그다음 책 선정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모두 좋은 아이디어라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우리는 [나의 MBTI가 궁금하단 마리몽]을 첫 번째 책으로 결정했다.
2주 후 가진 두 번째 모임은 정말 재미있었다. 네 명이 각자 다른 성향을 가지도 있어서 책을 읽으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는데,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다니 신기했다. 같이 머리를 들이밀며 책을 읽다 보니 순식간에 친해진 느낌이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독서모임이 이루어지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벅찼다.
하지만 이 달콤한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 번째 모임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책을 읽어오고 생각을 정리해 온 사람만 떠드는 모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패턴은 네 번째, 다섯 번째,...... 열몇 번째 모임에서도 계속되었다. 각자 원하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해도 그 두 분은 묵묵부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어오지도 않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 두 멤버는 단 한 번도 모임에 빠진 적이 없었다.
나는 결국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계속해서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떠드는 것에 지쳤다. 그래서 조심스레 제안을 했다. 사교모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떠냐고. 책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게 놀자고.
모두들 쉽게 동의했다. 오히려 홀가분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들에게 책이 부담이었던 모양이었다. 마침 그 시점에서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기 어려워지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세 명의 사교모임으로 전환되었다.
책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지자 오히려 더 편안하고 재미있는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난 한편으로 계속 불만을 품고 있었다.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으로 시작한 건데 이게 맞는 걸까?
사교모임으로 전환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물론 이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는 즐거웠다.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해 주는 시간들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좋은 책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정을 나누고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것이야말로 내가 꿈꿔왔던 독서모임의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집에서 책을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급기야 다시 책 이야기를 꺼낸 날 나는 이 모임을 깰 것을 결심했다. "언니가 알아서 하세요."라는 시니컬한 한마디 때문에. 다시 책을 정하고 같이 읽어봐요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말은 1년 전 그때와 똑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모임을 계속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좋은 말로 이 모임을 이제 그만 유지했으면 한다는 카톡을 보내버렸다. 나머지 둘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 바로 알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가끔씩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며 놀자는 말과 함께.
사실 독서모임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다.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서, 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바빠서 책을 못 읽었다는 변명, 재미없으니 다른 책으로 바꾸자는 말과 침묵들.
독서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도 밤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
그렇게 난 다시 혼자만의 독서로 돌아가버렸다.
아직 책을 읽을 때면 이 감동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느끼는 여운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한다.
언젠가는 진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책장을 넘겼다. 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