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독서 토론 수업3

서평 수업에서 마주한 아픈 기억, 그리고 새로운 시작

by 백서향

독서토론 수업의 마지막 날이 왔다. 이 수업에 참여할지 말지를 그토록 고민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시간. 서평 쓰기.


선생님께서는 전 시간에 백수린 작가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서평을 쓴 후 메일로 미리 보내달라고 하셨다. 백수린의 작가의 책은 [눈부신 안부]를 읽어 본 것이 전부였다. 그때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다행이기도 했다.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읽어보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백수린 작가가 정착한 그 동네. 그곳은 내가 예전에 살았던 동네와 너무나 닮아있었다.


백수린 작가는 그곳을 '사람 냄새가 나고 정겨운 곳', '살기 좋은 포근한 동네'로 표현했지만, 내게는 전혀 다른 기억의 장소였다. 겨울이면 수도가 얼어 터져 물이 나오지 않던 곳, 화장실조차 제대로 쓸 수 없어 고생했던 곳, 눈이라도 내리면 차가 오갈 수 없는 동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정말 끔찍했던 그 비탈길.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나의 차가운 기억이 충동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아려왔다.


결국 나는 서평을 쓰지 못했다.


백수린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들로 풀어낸 그 동네를, 내가 겪었던 불편하고 힘들었던 기억들과 함께 글로 풀어낼 자신이 없었다. 내 경험을 부정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작가의 감성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난 쓸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 분들의 글을 아주 찬찬히 자세하게 읽어보고, 선생님의 피드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언젠가 나도 서평을 쓰게 될 날이 올 테니까.'


깜짝 놀란 독서모임 계획서


이날 수업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퇴직하신 교사분께서 A4용지 여러 장을 깔끔하게 타이핑해서 들고 오신 것이다.


"수업이 끝나도 계속 모임을 이어가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두 '우와'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월별 독서 계획표, 세심하게 선별된 도서 목록, 외부 견학 일정까지. 심지어 설문조사지까지 준비해 오신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신경 쓰신 그분의 세심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이어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우리는 세부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좀 고민이 되었다. 주기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모임이 잘 이어가게 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러웠다. 지난번 독서모임의 실패 경험이 자꾸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옆자리 분도 계속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일단 이름 적어놓으라고, 나도 그랬다고 그분을 부추겼다. 안되면 나중에 빠지면 된다고.


사실 잘 운영될 것 같은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까지 도서관 관계자와 의논해 오신 회장님, 체계적인 계획서, 회원들의 걱정을 고려한 회장님의 발제문까지. 무엇보다 회장님께서 구심점 역할을 잘 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더군다나 선생님도 우리를 보시며 이 모임이 정말 잘 운영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민되는 사이에도 지난번 독서모임과는 다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체계적인 준비와 명확한 목표,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 진심인 사람들까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새로 생긴 책 모임 단톡방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모임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작가의 이전글브런치를 시작한지 열흘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