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이 처음부터 작가였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당연하다는 듯이 문예반에 들어가 산문과 시를 썼지만, 내 꿈은 아나운서, 대통령, 미스코리아 등 다양했다. 글을 써서 교내 대회에서 몇 번 수상한 적은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이렇다 할 큰 성과를 내지도 못했고, 어른들에게 특별한 칭찬을 듣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오디션', '은비가 내리는 나라', '블루', '리니지' 등 그야말로 종이로 된 만화책 유행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에 편승해 만화를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런 류의 글을 쓰는 친구들이 많이 늘어났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4대 천왕 같은 잘생긴 남학생이 평범한 여학생을 좋아하고 보호해 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 뻔한 이야기였지만, 반에서 너무 조용해서 약간 재수 없게 여겨졌던 나는 그 글들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를 싫어했던 아이들이 너도나도 '제가 쓴 글 읽어봤어?'라고 물었으니까. 학년말 롤링 페이퍼에는 '네가 만든 드라마 기대할게.'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내 앞에 진짜 재능을 가진 친구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 친구는 글쓰기를 정말 싫어했는데, 숙제로 써 온 글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아무리 애써도 따라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문장들, 감각적인 표현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난 글은 저런 사람들이 쓰는 거라고.
설상가상으로 드라마 작가를 겸업하고 있던 담임 선생님은 나의 꿈을 알았음에도 철저히 무시해 주셨다. 난 무기력해져서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마저 내 글을 무시한 순간 나는 작가의 꿈을 완전히 접었다.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이상 내 꿈은 작가가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그저 평범한 사회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 책을 많이 읽는 독자였고, 각종 공모전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꺼지지 않은 불씨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결혼 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는거지?'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없는 건 키즈모델 뿐이라고 했던가? 난 이대로 세월을 흘려보내기 싫어졌다. 다시 한번 '도전'이라는 것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브런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물론 한 번에 되리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첫 번째 낙방은 나에게 깊은 우울감을 안겨줬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걸까?', '그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은데 누가 내 글을 읽어주기는 할까?'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1년여의 세월 동안 혼자서 글을 쓰고 혼자서 읽어보았다. 때로는 절망하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시간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켜 주고 있음을 느꼈다.
마침내 두 번째 도전에서 그 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기분을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그 순간의 벅찬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아니었구나'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아직 브런치 작가가 된 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난 거의 매시간 브런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누구인가 나의 글을 읽어주고, 공감하고, 때로는 격려해 주는 것이 이렇게 벅찬 일인지 그동안 몰랐던 것이 억울할 정도다.
난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과 글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린아이가 품고 있던 소중한 소망 하나가 이제서야 피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 독자들과 소통하며 내가 꿈꿔온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