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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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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Jul 28. 2020

이민은 막연한 기대감뿐이었다

막연한 기대감뿐이었다. 내가 살아왔던 한국이 익숙했고 편안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호주에 대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뿐이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곳이 어떤 곳이지 재데로 알지 못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가 사는 곳이니 그와 함께라면 호주든 한국이든 다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의 행복한 새로운 곳에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뿐이었다.


무를 반 딱 썰고 나면 이 무가 꼭 나 같다. 이미 다 커버린 내가 나의 모든 추억, 기억,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딱 잘라버리고 한국에 두고와 나머지 반을 땅을 묻어 다시 시작하는 꼭 나 같다. 야무지게 잘라진 단면은 좀처럼 무뎌지지 않았고 4년이 되는 지금도 이 곳이 익숙해지려다가도 어색하고 늘 낯설다. 하지만 내가 처음 여기 올 때 누군가 이민과 결혼생활은 이런 거야, 호주는 이래,라고 구구절절 나에게 얘기해줬어도 나는 그 말이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기대감은 어머어마했기 때문이다. 


가끔 잠을 자려는데 깊은 데서 오는 아주 차갑고 서늘한 허한 마음이 몰려온다. 이불을 꼭 감싸 안고 최대한 몸을 말아 누워도 이 낯선 땅에 덩그러니 있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 한참을 뒤치다꺼리다 잠이 들 때가 있다. 허한 마음을 달래 보려 내가 이 곳에 왜 왔는지 한국보다 뭐가 더 좋은지 내가 한국에서 내가 어떤 게 힘들었던지 곱씹어 이 곳에서 지금의 내 삶이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 몇 번이고 내 마음을 설득한다.


한국에서도 늘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경험, 새로운 것,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었다. 매번 연휴와 휴가를 모아 스쿠버다이빙을 이 나라, 저 나라 다니기 바빴고 부지런히 해외여행을 다녔다. 그래서 이 곳에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었으면 나는 답답하고 갑갑한 그곳에 또 견디지 못하고 항상 새로운 곳, 나를 숨 쉬게 하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고 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어쩌다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 엄마 아빠랑 전화를 하게 되면 한참을 그리움에 전화를 끈 지 못하고 구구절절 보고 싶다는 말을 시시한 일상 이야기로 대신한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멀리 와서 엄마가 아픈데 약하나 사주지 못하고 맛있는 엄마 김치도 얹어 먹으러 가지 못할까. 여동생이랑 목욕탕도 주말에 만나 가고 싶고 저녁이면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지금은 뭔가 자유롭지 못한 곳에 내가 있는 기분이다. 


여기도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남편도 있고 나이가 들고 아이와 내 가족이 생기고 하면 더 이 곳이 익숙해지겠지만.. 내가 모든 게 익숙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있는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내 마음을 참 편안하게 했구나, 한국이라는 사회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지인들이 있는 곳이 나를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선 뭔가 하려면 하면 이전보다 더 많은 용기와 도전을 가슴속 깊이 끌어올려야 겨우 힘이 난다. 그렇게 끌어올려 힘을 내다가도 쉽게 꺼져버릴 때가 많지만 그래도 어떻게 서든 잔뿌리를 내리려고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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