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겪은 병원

by 진수

나는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통은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편이지만, 어떤식으로든 흔적을 남기는 일이 좋다. 낙서해도 되는 곳이라면, '진수 왔다감' 같은 말이라도 한마디씩 적어본다. 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찰나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글로도 적을 수 있지만, 갖은 의학용어로 상황 설명을 덧붙이다 보면 나의 장면을 온전히 보여줄 수가 없었다. 때로는 장황한 말보다 한장의 사진이 강한법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의료진의 웃음이나 노고의 모습일 수도, 환자와 보호자의 일상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적는건 내가 병원에 건의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협의한 사안도 아니다. 그냥 이런걸 해 보면 어떨까 - 하는 단순 상상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우선 병원 차원에서 필름카메라 몇대와 필름을 구매한 뒤 데스크를 통해 카메라를 대여한다. 대상은 의료진과 입원환자에게 (외래 환자의 경우 병원에 있는 시간이 짧으므로) 대여하며, 분실/파손을 대비하기 위해 직원은 IC 카드, 환자는 등록번호(환자 팔찌/바코드)가 필요하다. 필름도 제공 해주지만 필름값은 받는다. 대여 기간은 최대 3~5일로 한정한다. 이때 한가지 동의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상호 동의를 받은 피사체만 촬영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동의서다. 작동법을 알려준 후 떠나간 필름카메라는 병원 곳곳에서 촬영될 것이다. 환자들은 몰랐던 의료진의 모습, 반대로 의료진은 몰랐던 환자의 모습.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이 찍힐 수도, 가족의 마지막이 찍힐 수도 있다. 병원내 있는지도 몰랐던 공간이나 풍경들이 모여질거다. 그렇게 찍힌 필름은 카메라를 반납할 때 현상 여부를 결정한다. 원내에서 현상을 원한다면 필름들을 한번에 모아 협력 사진관에 보내고, 병원에서 받길 원한다면 병원으로, 집으로 받길 원한다면 사진관에서 집으로 배송해 주는 시스템을 갖춘다. 개인이 인화를 원한다면 이미 필름 값은 지불했으므로 필름을 돌려주면 된다. 이렇게 완료된 사진들 중 출전을 원하는 사진들을 모아 초상권 확인 후 작은 사진전을 개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게 기획의 최종단계다.

병원은 희노애락,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삶까지, 작은 생애을 담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일상적인 모습도 외부 사람들에겐 일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실습생이었을 때 봤던 병원과 보호자로 방문한 병원의 풍경은 낯설었다. 일하면서 본 모습과 외래 환자로 경험한 것 또한 내가 알던 병원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 병원에 근무하는 약 6000명의 직원들과 1900 병상을 채운 환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비슷하면서도 달랐을 삶이 보고싶다. 친구가 가족의 투병생활을 담은 책을 냈는데 (양말 긴 거, 감자, 고구마, 콩나물 국밥 : 엄마와의 이별이 내게 남긴 것) 집필 과정 동안 찍었다는 사진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보호자와 환자들 입장에선 병원이 이렇게나 차가울 때도, 기댈 곳이 여기밖에 없어 간절 할 때도 있겠구나, 나는 일상처럼 지나가는 순간들이 그들에겐 깊게 각인될 수 있구나 - 내가 모르는 모습이 참 많았다.

간혹 병원의 모습들을 담은 작은 전시가 열리기도 하지만, 사진사를 고용하여 관찰자로서 찍은 멋드러지는 병원은 궁금하지 않다. 내가 알고싶은 건 '당신이 겪은 병원' 이다. 현대미술처럼, 병원을 분해했다 다시 이어붙이며 각도와 주인을 다르게 하는 거다. 병원은 개인정보에 민감한 곳이다보니 이 기획이 어렵다는 건 안다. 그래도 나는 재밌게 생각해본다. 지금 내가 마주한 그들의 찰나를 남겨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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