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3편

by 진수

일 하고 있는데 가족 단톡방에 엄마가 응급실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휴게실로 들어와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오빠에게 전화를 거니 할머니가 쓰러져 구급차 타고 병원에 갔다 했다. 가족들이 나와 외식을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식사도 잘 하시고 컨디션이 좋아보였다고 한다. 근데 다 드시고 나서 갑자기 옆으로 넘어가며 엄마에게 기댔다. 그땐 의식이 있어 엄마가 왜그러냐 하니 어지럽다 대답하셨단다. 그렇게 잠깐 괜찮으셨다가 이번엔 완전히 쓰러지셨다. 의식이 있었는진 정확히 모르겠는데 구급차 타고 가는 동안엔 성함하고 생년월일 같은건 다 대답하셨단다. 특별히 팔다리에 힘 빠지는 건 없어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제대로 움직이진 못했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대학병원 응급실엔 보호자 1인만 상주 가능하여 엄마가 들어갔고, 삼촌과 가족들은 병원 앞에서 대기했던 모양이다. 뒤늦게 닿은 엄마와의 연락에선 응급실에서 할머니는 주무시고 계시고 심전도와 심장검사 이것저것 받았단다. 이전에 뇌졸중 있던 거 때문에 뇌 CT 와 MRI 를 찍기로 했단다.

나는 할머니가 뇌졸중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근데 이것도 사실 진단받은게 아니고 한쪽 손이 불편하여 동네 의원을 가니 '아마도 뇌졸중 증상이었을거 같다' 라고 했다는데.. 처음엔 이해가 안됐다. 그러면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하거나 외래를 다녀야 하는데 왜 이제껏 그냥 지내셨을까. 그리고 그 의원은 그걸 왜 그냥 넘어갔을까.. brain MRI 결과에서 예전 뇌졸중 흔적이 두개정도 발견 됐고, 이번엔 뇌졸중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뇌혈관 석회화가 많이 보여 일과성 허혈발작에 증상이었을 거라고 보았다. 이전에 뇌졸중 있던걸 알았는데 왜 아스피린 같은 약이라도 먹지 않았냐며 며칠 사이가 급성기니 입원하여 약을 먹고 지켜보자 했다. 이건 사실 엄마가 설명을 들어 정확하진 않은데 대충 이런식으로 말한 거 같다. 보호자들에게 풀어서 말하는게 나는 더 이해가 안갔다. 왜냐면 CT 상에서 "지저분하게 보였다" 고 하는데 이것도 뭐가 어쩃다는건지 모르겠고, 이전 뇌졸중 위치도 알고 싶은데 그것도 엄마가 알리가 만무했다.. 아빠도 설명은 하는데 그래서 지금 뇌졸중이 왔단건지 아니란건지 첨엔 뇌출혈이라 했다 뇌경색이라 했다가.. 내가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일하니 매일 보는게 뇌경색, 뇌출혈, 뇌종양 환자들인데 나한테 그 종류를 설명하고 있고.. 여튼 대충 내용은 이게 맞는거 같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니 할머니가 지금껏 다리를 절거나 어지러웠던것, 수원에 오고나서 보인 인지저하 증상 같은게 이 증상이었나 싶었다. 진단을 받고나소야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후회들이 밀려온다. 매일 그런 증상으로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보면서도 내 주변 사람이 겪을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 후 약을 드시고 나니 눈에 띄게 걷는게 나아졌다. 엄마 말로는 인지도 나아진거 같다 하셨다. 정말 TIA symptom 이었나 싶었고, 그런거라면 원인이 발견되었으니 다행이었다. GFR 도 30대로 좀 안좋긴 했지만 아직 소변도 잘 나오고, 쓰러졌던 당시 BP 가 낮아 AKI 일 수도 있어서 이건 관찰하기로 했다. 앞으로 연고지인 청주쪽에서 병원을 다니실지 우리 집 주변에서 다닐지, 아님 우리 병원에서 다닐지는 고민중이다. 할머니는 다행히 입원기간 동안 별 일 없이 잘 회복하여 퇴원을 앞두고 있다. 엄마는 만약 할머니가 혼자 계실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정말 돌아가셨을지 모른다며 어쩌면 지금 그러신게 다행이라고 하셨다. 오빠에게 많이 놀라지 않았냐고 하시는데 제일 놀란건 엄마였을 거 같다. 나는 병원의 생리를 어느정도 아니까 응급실 갔을때도 이런상황에서의 중요하게 알아야할 것, 준비해야할 것을 아는데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이와 동시에 할아버지의 요양원을 찾기 위해 어른들은 안팎으로 분주했다. 할아버지가 가실거니 직접 찾아가서 봐야 했었는데 엄마와 삼촌들이 시간이 다 맞기가 어려워 각자 되는대로 갔다 오고를 반복했다. 할머니의 병간호와 할아버지의 요양원 어느곳도 미룰수가 없었다. 왜냐면 할아버지가 혼자서 전자렌지를 쓰시려다 전자렌지 불가 용기를 넣어 전자렌지가 터질뻔한 일이 CCTV에서 보였고, 그런 모습을 보곤 삼촌이 집안에서 가스 켜놓고 담배피다 폭발할까봐 등 여러 걱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약을 먹으며 망상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할머니 이야기에는 화를 내셔서 다시 같이 사는건 안되는 걸로 모두가 동의했다. 요양원 3~4곳을 방문한 끝에 한곳을 정해 할아버지기를 모시기로 했다. 처음엔 할아버지가 절대 안들어간다고 하실까봐 다들 거짓말을 해야하나 많이 고민했는데 아들 딸들이 이야기하니 바로 알겠다며 너무나 편안히 들어가셨단다. 할머니 일을 제외하고는 정말 우리가 알던 그 할아버지 그대로였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고 나서 여러 감정에 휩싸인거 같았다. 예전에 요양병원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3~4년 전까지만 해도 걷고 일상생활 다 하시던 치매걸린 할머니가 1~2 년지나니 걷지 못하셨고, 또 1-2년 지나니 결국 침대에서만 생활하시다 돌아가시는 걸 보았다. 아마 할아버지도 돌아가실때까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생활하긴 어려우실거라고 엄마는 말했다. 말이 요양원이지 결국은 밖에 나갈 수 없는 감옥과도 비슷해보이는 그곳에 할아버지를 두고 온다는건 당연히 마음 아픈 일이다. 할아버지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 하지 못하겠다. 더이상 집에 혼자 계시진 않으니 걱정은 덜 되지만 그곳에서 잘 적응은 잘 하실지, 앞으로 치매는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몇개나 남아있을까? 할아버지가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삼촌들도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병이 나을 순 없지만 모두가 지금보단 나아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ICU 신규 교육을 받을때 임종/완화 간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강사 선생님께서 여기서 임종을 병원에서 맞고싶은 사람이 있냐 물었다. 한명도 없었다. 다들 가족과 집 같은 개인적 장소 혹은 의미있는 장소에서 맞고 싶다 했다. 근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고, 더불어 나는 그 임종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는게 직업이다. 임종 간호를 할 때마다 그래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바라시던 곳은 아닐지라도 가족들의 마음 안에서 아프지 말고 편안히 가시기를 바라니까. 우리 할아버지도 결국 끝에는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정말 많이 사랑하고, 마음은 늘 할아버지의 편에서 함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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