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할머니는 수원에 우리 집으로 오시게 됐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변한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헛것이 보이고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라셨다. 할아버지가 들어올 거 같다며 잠도 잘 못 주무셔서 수면제를 처방받아왔는데 다행히 그 뒤로 잘 주무셨지만 낮 동안에 졸려하셔서 모시고 어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1년에 하루이틀, 명절 때만 잠깐 가 밥 먹고 앉아있다 와서 잘 몰랐는데 같이 지내보니 다리를 절어 걷는 게 불편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청주를 떠나길 싫어하셔서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보신 적이 없었다. 이 집에 산지 10년이 되어가는데 처음으로 딸의 집에 와보신 거다. 내가 평일에 쉬는 날이면 가족들이 모두 출근하고 할머니와 둘이 수원 구경이라도 시켜드리고 싶었지만 요 며칠사이 일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전에 있던 이석증 때문인지 어지러움증이 심해져 오래 앉아있거나 서 있지도 못하셨다. 여러모로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저 같이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앉아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거의 온종일 거실과 안방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내가 너무나 평범하게 누려온 일상이 낯설 수 있단 걸 이때 느꼈다. 왜냐하면, 아파트에는 아파트 정문, 1층 공동현관, 그리고 집 현관문까지 외워야 할 비밀번호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집 비밀번호를 어디다 적어드릴 수도 없고, 할머니 핸드폰은 2G 폰이라 어플을 깔 수도 없었다. 밖에 나갔다 집을 못 찾아올까 봐 나가기 무섭다 하셨다. 마치 외국에 혼자 나갔던 내 모습 같았다. 그 주변을 알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던 곳에서 느끼던 외로움과 막연한 두려움. 할머니에겐 이 도시가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간편하게 보는 지도 어플이나 메모장 같은 것조차도 내게나 간편한 거였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드신 걸 설거지하려는 내게 "물이 안 나온다"라고 하셨다. 우리 집 주방 개수대는 바닥에 발판을 눌러야 물이 나오는데 할머니는 애꿎은 수도꼭지만 만지작만지작 해도 물이 안 나오니 끊긴 줄 아셨단다. 80이 훌쩍 넘은 할머니에겐 많은 게 낯설고 쉬울 리가 없었다. 지금 같은 컨디션에 새로운 걸 즐길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할머니는 빨리 청주로 가고 싶어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무서워서 같이 살진 못할 거 같다 하셨다.
결국 할머니는 그 작은 집에 복도를 40분 동안 오가는 걸 운동이라고 하시는 게 하루 일과에 다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 누워서 주무시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시고 다시 주무시고. 내가 폰을 하고 노트북도 하고 책도 읽고 하는 동안 할머니는 계속 TV 만 보신다. 그러는 와중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씻다가 어지러워 주저앉으시는 일이 생겼다. 식사량도 많이 줄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하는 말을 자주 깜빡하시거나 이해를 못 하셨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할머니도 인지저하가 오는 게 치매인 거 같다며, 할아버지를 겪어보니 일찍 약을 먹어야 늦출 수 있다던데 할머니도 검사를 받아봐야 할거 같다 하였다. 엄마가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오신다 했는데, 그걸 듣고 대답까지 하셔 놓고는 5분 있다 엄마가 어디 갔냐며 찾고는 하셨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할머니는 청주에서 에어로빅도 하고 수영 같은 운동도 하며 건강관리를 하셨다. 계모임도 여러 개 하는 인싸 할머니였던 거 같다.
근데 많은 게 변했다. 우린 변한 것들에 맞춰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노력해도 예전과 같이 살 순 없게 된 것이다. 치매는 나을 수 없는 병이고, 할아버지는 약으로 늦추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엄마는 이제 아버지랑 같이 못살아. 이제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우리 아범님도 치매 걸려 요양병원 가고 나서 어머님 하고 장례식장에서나 만났어. 아버지 병원 가시면 엄마는 청주로 돌아갈 거지만 이제 엄마 혼자 살아야 해. 엄마도 그만 슬퍼하고 앞으로 어떻게 혼자 잘 살아갈 건지 그걸 생각해" 나는 엄마가 왜 할머니에게 저렇게까지 말하나 했다. 엄마랑 둘이 있을 때 할머니도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데 왜 그러냐고도 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그건 일종의 엄마의 다짐인 거 같기도 하고, 그 말을 하는 엄마가 많이 슬펐을 거 같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엄마에게 저렇게 말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으며 말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이거 쓰면서도 울고 있다. 나는 생각만 해도 슬픈데 엄마는 어떻게 버틸까. 엄마는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하여 삼촌들도 일상에 돌아가야 한다 했다. 우리 엄마는 맏이고 그게 엄마의 책임감이었다.
그런 와중에 할아버지의 치매 등급이 하향되어 나왔다. 아마 이렇게 나빠지기 전에 받았던 검사라 그랬던 거 같다. 재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시 3~4일 정도 이 생활을 하게 됐고, 엄마와 삼촌들은 CCTV를 지켜보거나 돌아가며 청주를 가는 일상을 반복됐다. CCTV 속 할아버지의 삶도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시지만 식사하시고 하염없이 TV를 보거나, 주무신다. 씻고 다시 TV를 보고 졸고..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셨다 다시 앉아 계시고.. 두 분의 모습을 보는데 그냥 마음이.. 마음이 그랬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내가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고 놀다 들어오면 할머니는 내가 나갔던 그 모습 그대로 앉아있었다. 꼭 두 분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거 같았다. 내 삶은 너무나 빨리 가는데, 나는 하루가 모자라고 한 달이 모자라고, 1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데.. 이렇게 빨리 가다 어느 날. 갑자기 느려지겠지. 내 몸짓도 생각도 같이 느려지니 어쩌면 느려진 지도 모를 수 있다. 그렇게 느려지다 느려지다 멈추는 날이 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