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부엌에서 한약을 냄비에 끓이다 나의 부주의로 펄펄 끓는 물이 내 손등과 팔에 튀어 화상을 입었다. 쓰라리고 화끈거리는 느낌이 나더니 물집이 제법 크게 생겼다. 그 물집이 생긴 자리에는 2주 동안 상처가 낫지 않고 진물이 계속 나 결국 병원에 갔더니 항생제를 투여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낮에는 밴드를 붙이고 잘 때는 상처를 개방시켜 놓는 게 낫다고 했다. 화상을 입고 3주 후부터 상처 부위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팔 위와 손등에 하얀 흉터를 남기고 치료가 끝났다.
화상은 치료가 되었지만 예전의 피부 같지 않은 선명한 자국은 눈에 거슬리고 보기가 싫어 속상했다.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흉터가 몰라보게 희미해져 눈을 부릅뜨고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한의원을 하기 전에는 대진이나 부원장으로 있으면서 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맡아야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환자들과도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의원을 시작하고부터는 환자들에게 좀 더 다가가 되도록이면 많은 얘기를 들어주고 싶었고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는 분들은 특히 마음도 치료해 주고 싶었다. 나의 치료 접근 방식이 감정이입으로 힘든 부분도 솔직히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화상을 입었을 때처럼 쓰라리고 화끈거리면서 흉터를 남기는 일들을 사람들로부터 많이 겪었다.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들이 줄줄이 있었고, 난 그때마다 정말 돈이 없어서 못 빌려준다고 핑계 아닌 사실을 말했다. 어떤 환자는 아예 계좌번호를 나에게 내밀면서 나보고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 방에서 뛰쳐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험은 태어나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잘해주고 싶어 정성을 들여 치료해준 환자인데 진심이 잘못 전달되었나 , 치료가 목적이 아닌 돈을 빌리기 위해 한의원에 오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이후에도 한시간 이상의 치료가 소요되는 환자가 빈번히 퇴근시간을 30분 정도 남기고 오곤 했는데, 항상 나는 을의 입장에서 갑인 환자를 맞이하곤 했었다. 직원들을 먼저 퇴근시키고 남아 치료를 끝내는데도 미안해하거나 고마운 마음은 없어 보이는 갑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원장님 좀 뵐게요'라는 불길한 암시를 주면서 내 방에 들어와 불만을 쏟아놓곤 했었다.
은행 대출금만 다 갚았어도 부원장이나 대진으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오너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고, 쓰라린 흉터가 마음속에서 늘어날 때마다 이 직업은 나와 맞는 건지, 괜히 시작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나를 구석으로 몰아세웠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손등과 팔의 화상 흉터처럼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옅어졌지만 그 이후부터는 한 발자국 떨어져 환자를 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를 단단하게 잡아 준 건 다름 아닌 격려와 응원, 지지, 관심을 보여주고 진심이 통한 환자들 때문이었다.
나를 믿고 오시는 환자분들은 앞으로 내 글 속에서 주인공이 되어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생채기를 호호 불어주며 흉터가 남지 않게 해 주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