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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Feb 05. 2022

40시간 동안의 자가격리를 위해 준비한 것들

사진 속의 디저트

토요일 퇴근 후 월요일 출근까지 40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40시간 동안 집에서 자발적인 자가격리를 하면서 뭘 준비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건 역시 먹을거리다.


냉장고와 냉동실에 가득 들어있는 식품들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나의 굶주림(진짜 굶주림과 가짜 굶주림)을 해결할 생각이다.

진짜 배가 고플 때 먹는 음식과 나의 뇌가 고프다고 할 때 먹는 음식은 엄연히 다르다.


부침개를 좋아하는 나는 진짜 배가 고플 때 금방 꺼내서 먹을 수 있도록 기름과 밀가루가 만들어낸 합작품인 전을 미리 부쳐 놓았다가 데워 먹는다. 자주 먹는 부침개로는 돈가스 소스를 뿌려 먹으면 맛있는 양배추로만 만드는 오꼬 노모 야끼, 근대를 작게 썰어 계란물과 섞어 만든 근대가 아주 많이 들어간 근대 오믈렛, 냉장고 야채칸에 남아  한 가지로는 빛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여러 재료가 합쳐질 때 더욱 빛나는 '이것저것 야채전'도 먹을만하다. 삶은 고구마나 숙성된 바나나를 으깨 넣어 만든 팬케이크는 딸이 해준 특허품인데 맛있어서  나도 자주 만들어 먹는 편이다. 배달시키거나 사 먹지 않고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격리 생활을 하기로 해서 디저트는 사진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배는 고프지 않은데 입이 심심하거나 허전할 때 나의 뇌가 음식을 원한다. 그럴 때는 주로 마시는 걸 선호하는데 가장 먼저 커피가 떠오른다. 나에게 허용된 커피양은 하루 두 잔이며 이후부터는 가지고 있는 마실 것들이 다 동원된다. 작년 11월에 만들어 놓은 유기농 유자차에 잣과 꿀을 넣어 한잔 마신 후 , 카이엔 페퍼를 넣어 핫쵸코를 만들어 마신다. 마지막으론 티를 우려내어 마시는데 배가 부를 때까지 마시고 나면 더 이상 마실 게 없다.


이렇게 준비되어 있는 음식과 마실 것들을 점검하고 집안의 먼지들을 외면하고 싶어 책을 준비한다. 평일 퇴근 후에는 저녁 먹은 후 졸려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쌓아놓고 볼펜과 노트를 책 옆에 끄내 놓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블루투스에 연결해 음악을 켜놓고 노트북을 충전한다. 글 쓸 준비를 다 마친다.


40시간 동안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집 안에서 지내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빼 버릴까 갈등이 된다. 글은 노트에 펜으로 쓰면 되니까.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 나고 어쩌면 내가 사라졌다고 실종 신고를 할 수도 있을 강력한 것들이다. 


이런 물질적인 것들 외에 내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격리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소통의 부재, 심연의  고요함, 세상이 정지된  듯한 멈춤과 함께 하는 것이다. 템플 스테이에 굳이 가지 않아도 이런 경험을 통해 펑소에 느끼지 못했던 솔직한 감정들을 느끼며 생각의 파도를 탈 생각이다.


소박한 음식과 마실 차, 책을 읽으며 고요한 바닷속을 탐험하듯 단순한 일상이 주는 행복감을 맛보고 싶다. 

내원한 환자수 따위는 잊어버리고 평소에는 지나쳤을 햇살을 손으로 만지며 누려보고 다른 작가들이 써놓은 글들을 맘껏 읽으며 내 안에 갇혀 있던 영감을 불러와 격리된 공간에서의 기쁨을 발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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