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환이란 처음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를 말하며, 초진이라고 한다. 그 반대는 재진이다.
초진으로 오신 분은 접수실 직원이 인적 사항과 공단 조회를 거쳐 접수를 하면 내 방 컴퓨터 차트에 "초진"이라고 입력이 되는데 그 순간 마음이 설렌다.
어떤 분일까. 궁금해진다. 생년월일로 나이를 알 수 있고, 성별을 아는 정도이다.
마스크로 내 얼굴의 반 이상이 가려지지만 그래도 첫인상이 나쁘지 않도록 단정히 앉아서 환자를 맞이한다.
초진으로 왔을 때 환자와 대화를 가장 많이 하게 되는데, 진료할 때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꼼꼼하게 증상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서이다.
환자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이 되어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몇 달, 몇 년이 지속되는 수도 있다.
초진으로 만나 몇 년째 오시는 환자분이 있다. 초진 날 대기 시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해하던 날 오히려 걱정해 주며 치료받는 내내 감사하단 말씀을 하셨다. 이 분은 작년에 재개발이 끝나 새로 지어진 옛 동네 새 아파트로 이사 오셨지만 몇년간 재개발로 인해 먼 동네로 이사를 가셨을 때도 치료받으러 계속 오셨다.
10년 넘게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남편을 돌보며 청소용역회사에서 일을 하시는 분인데 언니와 형부, 자녀들 약까지 지으면서 날 열심히 홍보해 주신 고마운 분이다.
가끔 환자하고 밀당을 할 때가 있다. "원장님, 치료받으러 계속 와야 해요? 저희 집 주변에도 한의원이 많던데."
마음속으론 나한테 매일 오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힘드시면 가까운데 가서 치료받으시고, 저한테 꼭 안 오셔도 돼요."
이런 식의 대화가 가끔 오갈 데가 있다.
두 달 동안 이 분이 안 오셨다. 이 환자도 나와 밀당을 하자는 건가?
연말연시, 구정이 끼어 바빠서 못 오시거나 아님 통증 의학과로 가셨거니 하고 있었던 한적한 오후, 졸음이 몰려와 눈을 감는 순간 밖에서 들리는 이분의 목소리에 잠이 확 달아나고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 반가워 뛰어나가고 싶었으나 내 마음이 들통날까봐 물리치료가 끝나는 소리가 울리자마자 환자에게 갔다.
요양 병원에 10년 넘게 계시던 남편분이 돌아가셔서 한의원에 못 왔다고 하셨다. 쌓였던 나의 추측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의를 표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듯이 한의원도 이젠 환자의 취향에 맞아야 한다. 거리에 나가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한의원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 많은 한의원들 중에 나에게 오는 환자들은 취형 저격한 한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과 오래,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밀당이 아닌 남편분을 하늘나라에 보내신 큰일을 치르시고 두 달 만에 오신 환자분은 더 소중했다. 나는 비보험인 약침 값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나의 억측을 사과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