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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B Feb 17. 2022

제2의 나를 찾는 시기

갱년기

애들을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은 한의사인데 쉬는 게 아깝지 않냐고 했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독박 육아는 운명처럼 느껴져 ,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뭔가를 찾아가며 열심히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어린 딸과 가끔 충돌이 있었지만, 예스와 노를 확실히 할 수 있는 딸의 성격이 마지못해 예스를 해놓고 나중에 후회하는 나보다 앞으로 살아가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과 부딪치며, 먼저 손을 내밀어 다독거리면서 나와 아이들은 같이 커 갔다.


전업 주부로 살 때 힘들었던 건 다른 아이들의 엄마와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창의성과 주도적 자기 학습, 논리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던 때라 이와 관련된 과외수업들이 많았다. 과외 수업에 관한 모든 건 정보였다. 그 정보들은 다른 엄마들로부터 들어야 했고. 그 정보를 얻기 위해선 엄마들하고의 교류가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말을 걸고, 커피 마시자고 제안하고, 서로 알아가면서 애들도 친해지고 서서히 엄마끼리도 친해지는 과정에 공을 들여야 했다. 난 솔직히 엄마들 속에서의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전업 주부로 살 때 한 번씩 느끼는 무기력감을  같은 입장의 사람들끼리 얘기할 때 공감대가 형성되어 혼자 있을 때 보다 활력이 되기도 했던 그 시기에 전업 주부로써의 자리가 확실해지고 있었다.

집으로 반 아이들과 엄마들을 초대해 생일 파티도 열어주고, 슬립 오버도 하면서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고자 요리도 배우고, 제빵도 배우며 부지런히 나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 직장에서 잘 나가는 같은 반 아이의 엄마를 보면서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내 아이들은 내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영원히 주부로만 사는 게 왠지 임무를 다 수행하지 못해 낙오된 병사 같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었다.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요리 배워서 카페를 하고도 싶었고, 한의사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미래는 주부의 삶에  이 셋 중 한 가지가 플러스되어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주부 플러스 알파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를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주로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읽고, 아침에는 도서관에서 한의학 공부를 하고, 낮에는 빵을 만들고, 저녁에는 동영상으로 근육학과 한의학과 연관된 강의를 들었다.


보통 여성의 나이가 40이 넘어 중반으로 가면 여성 호르몬 분비가 서서히 줄어들어 기분이 울적해지기도 하고, 불안정해지기가 쉽다.  이런 시기를 갱년기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시기야 말로 여성들이 새로 태어나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본다.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24시간 케어에서 벗어나 관리 차원으로 넘아가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자기 계발을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직장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삶속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책과 자기 계발에서 얻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이다.


아이들과 함께한 행복한 기억들과 다른 엄마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었던 전업 주부 시기인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복잡한 시기를 거치고 본격적으로 나를 찾기 시작한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늦지 않았던 그 시기는 갱년기라고 부르는 40대 초반이었다. 아이들로 향했던 열정을 나에게 쏟아부을 수 있는 갱년기야말로 "제2의 나"를 찾는 시기라고 본다.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시기이다.


아이들이 잠자는 조용한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지금도 여전히 새벽 시간을 즐기는 나는 내 속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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