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형을 찾으니 행복이 만져진다.
한의원 옆에 내가 잘 가는 세탁소가 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옷들이 빼곡히 걸린 행거 옆으로 한 사람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다인 비좁은 곳에서 사장님은 접수도 하고 옷을 찾아주기도 하신다. 옷을 맡기러 갈 때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여긴 꽤 잘 되네'라고 생각하면서 옷을 맡기는 내게 사장님은 지금은 손님들이 많지만 하루 종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지겹고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하루 중 몰리는 시간대에 온 손님들은 하루 종일 세탁소가 비쁜 줄 안다고 하길래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손님을 기다리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며 조용한 시간에는 가게를 지키는 게 스트레스라 고객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아예 문을 닫고 외출을 하신단다. 나름 현명하게 대처하고 사시는 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참고 사는 게 능사라 생각했다. 스트레스는 넘어야 할 산이라 여겨 극복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사람들은 많은 질병들 중 지속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외면한다. 나는 한의원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 사람이다.
예약제 진료가 아니다 보니까 예기치 않게 환자가 부쩍 몰리는 시간이 있다. 그때 오시는 분들은 간혹 나에게 "원장님 빌딩 짓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말은 백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하지만 환자가 없는 조용한 한의원을 지킬 때의 심정은 근심이 차곡차곡 쌓여 빌딩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다. 근심 빌딩은 몸이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혈압 오르듯 뒷목이 당기고 가슴 한가운데가 무겁게 느껴지면서 얼굴 위로 열이 올라가 머리카락이 쭈뼛거린다. 이러다가 내 몸이 다 타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번 아웃이다.
정신에 의해 육체가 지배된다고 느끼는 순간 쉬어 갈 때이다. 한의원에 출근하면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던 내가 어느 순간 이런 건 직원들이 원장을 위해 미리 끓여 놓으면 안 돼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반려견 순이가 때론 귀찮게 여겨지고, 갑자기 내 앞에 끼어드는 차가 오늘따라 너무 얄미워 나도 모르게 경적을 울려땔 때 쉬어가라는 경고음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차린다.
세탁소 사장님처럼 나도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문을 닫고 외출은 못하지만 진료시간을 조정했다. 환자들이 비교적 적게 오는 주중 하루를 택해 단축 진료를 한 지 8개월 정도 되었다.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7년간의 고집스러움을 버린 것과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노력 한 나의 결단은 반나절이 주는 행복으로 보상받았다.
퇴근시간에만 교통체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낮시간에도 차가 많은 걸 보고 놀라기도 했다. 마치 군 복무 중인 군인이 휴가 받아 나온 것처럼 도시의 정신없이 움직이는 기운과 집이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절약하며 썼다.
한의원에서의 삶과 한의원을 벗어난 삶의 균형을 찾으려고 나선 모험은 낯선 세계가 주는 긍정의 힘과 에너지가 행복으로 변하여 나를 간지럽히고 있었다.